[유병언 시신 확인/무능한 검경]단서 널렸는데 노숙자 취급 헛발질
검찰 “유병언 잡는다”… 하루 뒤 경찰 “유병언 숨졌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임정혁 대검 차장검사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6개월 기한으로 재청구하고 검거를 호언장담한(왼쪽 사진)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22일 오전 전남 순천경찰서에서 우형호 경찰서장이 지난달 12일 발견된 변사체의 지문이 유 전 회장의 것과 일치한다고 발표했다(오른쪽 사진). 순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뉴시스
○ ‘유병언 상징물’ 발견하고도 단순 변사 처리
순천경찰서는 “시신 발견 당시 행색이 노숙인 같고 유 전 회장이라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어 무연고자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 박윤석 씨(77)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한 현장엔 유 전 회장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시신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은 유 전 회장의 가방 안에 매실 대여섯 개와 속옷, 양말 등이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이런 물건들은 유류물 목록에 올라 있지 않은 것으로 미뤄 경찰이 시신 수습 과정에서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 시신이 발견된 지 40일이 지난 22일에도 현장에 유 전 회장의 머리카락이 남아 있는 등 현장 증거물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 발견된 시신이 유 전 회장일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못했고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오고서야 알게 됐다”면서 “초동수사에서 실수가 있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변사자 보고를 받고 사건 처리를 지휘한 검찰도 안이하긴 마찬가지였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의 담당 검사는 ‘사망자에게 금니가 10개 있다’는 등의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의심 없이 일반 변사자 처리 절차에 따랐다. 금니 10개가 유 전 회장의 신체 특징이라는 걸 파악하고 있었는데도 소홀히 넘긴 것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유류품 보고는 올라왔다”면서도 “민생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 검사가 신문을 못 보는 입장이었을 수 있고 유 전 회장에 대한 지식도 한계가 있었을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 사람만 경계를 제대로 서도 전쟁을 막는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 당혹스러운 검경… 공조 삐걱?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시신의 DNA와 유 전 회장의 DNA를 비교하고 있다는 정보만 신속하게 알려줬어도 수사 결과 발표를 하루 늦추든지 해서 공개적인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진태 검찰총장이 22일 순천지청의 변사자 처리 과정을 면밀히 파악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대검 감찰본부는 순천지청에 감찰팀을 보내 진상을 파악하기로 했다. 경찰청도 초동수사 미흡에 대한 책임을 물어 우형호 순천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을 직위해제하고 과학수사팀장 등 관련자 전원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를 방문해 민정-정무수석비서관실 관계자들과 만나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향후 대처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