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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0일]실종자 10명, 그들의 이야기

입력 | 2014-07-22 03:00:00

[세월호 100일, 기억하겠습니다]<중> 팽목항, 지켜온 사람들
주부 이영숙씨… 아들과 함께 올레길 걷기 꿈
권재근씨-혁규군… 제주 귀농길에 가족이 참변




세월호 참사 100일(24일)을 앞두고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는 10명. 단원고 학생 5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며, 누군가의 남편이자 선생님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전남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찾아가 실종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 천사 같은 우리 아이들

단원고 황지현양7년만에 얻은 해맑은 외동딸

단원고 2학년 황지현 양(17)은 아버지 황인열 씨(51)와 어머니 신명섭 씨(49)가 결혼 7년 만에야 얻은 ‘보물’이다. 10일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신 씨는 “7년 만에 와서, 17년 동안 행복하게 해주고 가버렸네”라고 읊조렸다. 외동딸로 애교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노래나 춤을 선보여서 가족들을 웃게 만들어 주고는 했다.

지현이는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무섭다며 밤에 불도 못 끄고 잤지만 기회가 있을 때면 또 보고 오고는 했다. 그림 그리기를 즐겼던 지현이의 노트 한쪽에는 친구 얼굴과 만화 캐릭터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미술을 전공해 보라는 권유에 “돈도 많이 들고 부담드리기 싫다”고 했다. 최근에는 중국어로 진로를 찾겠다며 공부를 시작했지만 꿈을 펼쳐보지 못했다.

단원고 박영인군못사준 축구화 팽목항에 놓고…

박영인 군(16)은 스포츠를 좋아했다. 야구경기를 시청하던 아버지 옆에는 늘 영인이가 있었다. 부자는 종종 경기장에 관전을 하러 가기도 했다. 또래 남학생과는 달리 둘째 영인이는 부모와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어머니 김선화 씨(44) 휴대전화의 사진첩에는 셋이 찍은 가족사진이 가득하다. 어머니는 영인이가 갖고 싶어 한 건 다 사줬지만 유독 축구화만큼은 사주지 못했다. 팽목항에 있는 영인이의 축구화는 어머니의 미안한 마음이다.

단원고 허다윤양용돈 안조르던 애교만점 효녀

희귀병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둔 허다윤 양(17). 가정 형편을 알기에 용돈을 달라거나 무언가 사달라고 조르는 적 없었던 착한 딸이다. 예외가 있다면 허 양이 좋아했던 인기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음반과 포스터. “아빠, 미안해요”라고 조심스레 말하면 아버지 허홍환 씨(50)는 딸의 애교에 못 이겨 용돈을 꺼내 줬다.

○ ‘또치쌤’ ‘단원고 지킴이’

고창석 교사고슴도치 머리, 정장의 ‘또치쌤’

단원고 체육교사인 고창석 씨(40)는 출근할 때 반드시 정장에 넥타이를 했다. 머리도 왁스로 세웠다. “운동복을 입고 출근하지 그러냐”는 사람들에게 “체육도 학문이고 절대 가볍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제자들은 그를 고슴도치 머리의 ‘또치쌤’이라며 따랐다.

고 씨는 가족을 아꼈다. 쉬는 날이면 아내 민모 씨(36)와 두 아들을 데리고 캠핑을 다녔다. 아이들은 체육교사인 고 씨가 유치원 운동회 때 ‘뒤로 달리기’ 경주를 하던 중 넘어지고도 1등으로 들어온 걸 자랑스러워했다. 매년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사무실로 꽃바구니를 보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아빠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15년 차 교사인 고 씨는 중학교에서만 교편을 잡다가 올해 처음 고등학생들을 맡았다. 줄곧 경기 안산에서만 근무했다. 강원 양양군 출신인 고 씨는 안산에 애착이 많았다. 아내는 남편이 대학생 때 바다에서 인명구조도 했고, 수영을 잘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에도 제자들을 구하느라 가장 늦게 나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 씨는 참사 당일 아내에게 전화나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했다.

양승진 교사천년초 키워 장학금 마련

단원고 인성생활부장 양승진 씨(57)의 부인 유백형 씨(53)는 “어휴, 웃는 표정이 하나도 없네요”라며 남편의 사진을 뒤적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이 많은 남편이었다. 그는 학교 뒷산 주말농장에 사과나무도 심고, 천년초도 키웠다. 천년초가 수익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팔아 ‘천년초 장학금’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오전 6시 40분이면 출근해 하얀 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학생들을 지키던 ‘단원고 지킴이’이기도 했다.

○ 아직 못 나눈 정이 많은데…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손주나 돌봐주며 살고 싶어.”

이영숙 씨(51)는 평소 외아들 박경태 씨(29)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남편이 16년 전 사망한 후 생계를 위해 아들을 시가에 맡기고 타지에서 일을 했다. 사춘기 아들은 그게 싫어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몇 년 전에야 박 씨는 이 씨를 향해 다시 “엄마”라고 불렀다.

이 씨는 지난해 여름 제주의 유명 호텔식당에서 일을 했고, 이후 아들과 같이 살 생각으로 서귀포에 방 두 개짜리 집을 얻었다. 부산의 해상풍력 회사에 취직한 아들에게 “아들, 제주도 언제 올 계획이니”라고 자주 전화를 했다. 박 씨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제주로 파견을 올 예정이었다. 아들과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걸을 꿈을 꾸던 이 씨는 본가가 있는 인천에서 제주로 짐을 옮기기 위해 세월호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권재근 씨(52)는 베트남 출신 아내 한윤지 씨(29), 아들 혁규 군(6), 딸 지연 양(5)과 함께 감귤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제주로 귀농하던 길이었다. 일가족 가운데 한 씨만 시신이 발견됐고 권 씨와 아들은 실종 상태다. 유일하게 생존한 지연 양은 친가에서 돌보고 있다.   

《 실종자 10명 가운데 단원고 남현철 군(17)과 조은화 양(17)은 부모들이 자녀의 이야기를 게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본 기사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  
 


진도=이건혁 gun@donga.com
진도=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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