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원 KAIST교수팀 ‘미세조류 인공석유’개발… 2015년 특별한 실험
“한국 토종 전투기 FA-50에 우리가 개발한 ‘바이오 인공석유’를 넣고 하늘을 나는 겁니다. 국방과 에너지 자립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9일 대전 KAIST 생명화학공학과 1층의 한 실험실. 여러 명의 연구원이 오후 10시가 넘도록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시퍼런 녹조류로 가득 찬 수조를 이리저리 살피며 각종 약품을 주사기로 집어넣었다. 녹조 또는 적조라고 부르는 수중 광합성생물, 즉 ‘미세조류’가 자라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서다.
강이나 바다에 미세조류가 급증하면 물속에 햇빛이 닿지 않아 수중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양지원 KAIST 교수팀은 오히려 미세조류를 ‘보물’처럼 대한다. 이유는 딱 하나, 인공석유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양 교수팀은 2010년부터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원하는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의 일환인 ‘차세대 바이오매스 연구단’을 맡아 4년째 미세조류를 키우고 있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비행하는 전투기는 그야말로 ‘기름 먹는 하마’다. 대형 전투기는 시간당 최대 50드럼(10t)의 기름을 연소하고 FA-50 같은 소형 경전투기도 약 20드럼(4t)을 태운다.
이런 점에 주목한 연구단은 최근 공군 연구분석평가단과 공동으로 특별 실험을 기획했다. 많은 기름이 필요한 항공유를 미세조류로 생산하고 이 항공유를 지난해 실전 배치를 시작한 한국형 경전투기 FA-50에 주입해 하늘에 띄우겠다는 것이다. 원유 수입 없이 항공유를 확보할 수 있으니 자주국방에도 도움이 된다.
연구단은 신재생에너지벤처 엔엘피(NLP)와 공동으로 경남 하동에 물 100t을 넣을 수 있는 수조 16개와 10t 용량 수조 20개를 설치해 총 1800t 용량의 미세조류 시험생산 시설을 올해 마련했다. 현재 이 수조에서 수온, 일조량, 영양염류 농도 등을 정교하게 조절하면서 미세조류 배양을 시험 운영 중이다. 미세조류에서 기름을 짜내는 일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이, 이 기름을 항공유로 바꾸는 일은 SK이노베이션이 맡는다.
양 교수는 “기름을 짤 수 있는 수준으로 미세조류를 배양하는 데 1, 2주 걸린다”면서 “올해 9월 기름 생산을 시작하면 내년 여름 FA-50에 주입할 기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세조류로 생산한 기름을 전투기에 실험하는 계획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미세조류처럼 생명체에서 뽑아낸 연료를 바이오매스라고 부른다. 1세대 바이오매스는 주로 사탕수수나 옥수수 같은 식량이 원료였다. 지금도 브라질에선 사탕수수로 알코올을 만들어 자동차 연료로 쓴다. 하지만 이 방식은 기아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음식으로 자동차 연료를 만든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2세대 바이오매스는 폐목재나 톱밥 등에서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알코올로 만든다. 하지만 이 역시 기름 추출 효율이 떨어져 상용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미세조류를 쓰는 3세대 바이오매스가 인기다. 성장이 빠른 데다 기름 함량도 많아 사업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미세조류로 만든 연료는 일반 휘발유나 항공유 등과 성분에서 큰 차이가 없고 미세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친환경 에너지로 불린다. 주유소 등 기존 시설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양 교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빨리 자라고 지질 함량도 높은 새로운 미세조류를 개발하는 연구와 최적의 배양 기술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면서 “여건만 뒷받침된다면 10년 안에 상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양지원 KAIST 교수(위 사진 왼쪽)가 연구원과 함께 미세조류 배양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연구진은 미세조류에서 기름을 채집한 뒤 이를 항공유로 바꿔 한국형 전투기인 FA-50의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공군과 논의하고 있다. 첫 비행은 이르면 내년 여름 진행될 예정이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