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울대 공대생의 한국전쟁/김형갑 지음/134쪽·8000원·역락
그 가운데 ‘어느 서울대…’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군인(?)의 이야기다. 저자인 고 김형갑 전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는 1930년 전북 정읍 출신으로 서울대에 다니다 남침한 북한군에 강제 징집돼 ‘인민해방군’이 됐다. 낙동강 전선부터 두만강까지 이리저리 끌려 다녔으나 1952년 4월 원산에서 조각배를 타고 탈출해 다시 남한으로 돌아왔다. 휴전 이후인 1958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한평생 타향살이를 했다.
이 책은 원래 출판을 염두에 뒀던 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 교수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들이 우연히 발견한 글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문장이 다소 거칠고 분량도 짤막하다. 하지만 그런 약점이 이 글이 지닌 묵직한 힘을 가리진 않는다. 억울한 심정에 분노하거나 염세적일 수도 있는 상황이건만, 자신이 겪은 전쟁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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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인은 당시로선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무작정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긴 했어도, 줄곧 후방 작업에만 투입돼 총부리를 겨누고 누군가의 목숨을 앗는 비극은 겪질 않았다. 수많은 미 함대와 공군의 포격을 겪었지만 크게 다친 적도 없었다. 본인도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꿈 많던 스무 살 젊은이에게 파리 목숨처럼 취급받으며 세상의 강압에 휩쓸렸던 시간은 이후 평생의 낙인으로 남았다. 그리고 6·25전쟁은 지금도 휴전 중이다. 어떤 거창한 명분을 내걸건 피눈물을 쏟은 건 민초들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