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前국회의장, 51년 정치인생 회고록 출간
“무슨 소리야! 내가 이 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데, 뭐? 야당이 반대한다고 국회에서 통과를 못 시켜? 뭐 이런 일이 다 있어!”(박정희 대통령)
제63회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이던 1968년 2월 29일 오후 10시 반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예산 조달을 위한 세법 개정안 처리에 김 의장이 난색을 표하자 박 대통령은 화를 참지 못하고 재떨이를 던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공화당 원내부총무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82·사진)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각하, 고마 한 번만 봐 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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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의장이 최근 회고록 ‘정치는 가슴으로’를 출간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를 하다 1963년 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2004년까지 8선(選) 국회의원, 두 번의 국회의장 등으로서의 51년 정치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회고록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 시작해 역대 대통령이 역사와 국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했다.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빗발치던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이 전 의장에게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를 만나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해 줄 것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찾아간 노 당시 대표는 “나도 직선제를 (전 대통령에게) 건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계를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토로한다.
이 전 의장은 회고록 서문에서 “모든 정당이나 정치인을 보수와 진보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썼다.
이 전 의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사를 객관적 사실 그대로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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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의장은 회고록의 제목(정치는 가슴으로)을 얘기하면서 “정치와 사랑은 계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정치는 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