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없는 시인’ 림태주… 페북 글모아 첫 산문집 펴내 명랑-유쾌-감성의 시적 산문… 조국 교수 등 공유 통해 큰 반향 페친 5000명에 팬클럽 회원 600명 “지적 욕망이 들끓는 페이스북은 자기 이야기 있는 30,40대에 적합”
첫 책으로 산문집을 펴낸 림태주 시인. 그는 “슬픈 이야기는 담담하게, 진지한 이야기에는 반전을, 감상적인 이야기는 감정을 더욱 넘치게 쓰고 싶다. 산문을 시처럼 쓰고 싶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행성:B’라는 작은 출판사를 꾸리는 시인은 남의 책만 만들다가 드디어 ‘저자’가 됐다. 하지만 매달 십여 권의 시집이 쏟아지는 한국에서 20년간 시집 한 권이 없다니.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장석남 시인의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을 읽고 좌절했다. 시를 이렇게 쓰는 사람이 시인이어야 되겠더라. 시를 정말 사랑하면 좋은 독자로 남아도 괜찮지 않을까. 1990년대 말 ‘문학동네’에 작품을 발표한 게 마지막이다. 지난해 실천문학에서 시집을 내자고 해서 시를 정리하다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현실에서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그이지만 페북에서는 명랑주의자로 변신한다. 욕 한 바가지 들어도 목소리만으로 힘이 돼 준 엄마 얘기도 쓰고, 지슬밥(감자밥)만 먹이는 제주 출신 하숙집 아주머니(사실은 아내), 문자로 세상을 배우는 어설픈 책바치보다 유식한 나팔꽃 다방 꽃니미도 페북에 불러냈다. 고3 딸과 고1 아들에게 주는 글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공유하며 물결을 일으켰다. 명랑 유쾌하면서도 애잔한 감성을 품은 시적인 산문에 매료된 이들이 늘어갔다. 지금 시인의 페북은 친구 5000여 명에 팔로어만 3000명이 넘는다. 팬클럽 회원은 600명에 이른다.
산문집을 엮으면서 필요한 부분은 모두 페북 안에서 해결했다. 본문 사진은 페북 친구들로부터 받은 1000여 컷 중에서 골랐고, 추천사 역시 그 친구들이 써줬다. 추천사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조국 교수, 류근 시인, 정철승 법무법인 더 펌 대표변호사.
“페북은 자기만의 콘텐츠, 자기 이야기가 있는 30, 40대에게 적합한 것 같다. 배우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도 충족시켜 준다. 지적인 욕망이 들끓는 페북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호응을 받는다. 나는 내 글이 항상 부끄러웠다. 잘 쓰는 글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 역시 페북이 없었다면 책을 낼 용기를 얻지 못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