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華는 조선시대 치열한 고민의 산물…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배우성 서울시립대 교수는 “중화는 조선시대 내내 주류적 가치관이었다”며 “그런 흐름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이끌지 못했다고 해서 망국적 사상으로 폄하하는 건 가혹한 잣대”라고 말했다. 배우성 교수 제공
―일반적으로 중화주의는 사대주의의 원류라고 탐탁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일단 주의부터 떼자. 주의라고 하면 하나의 학설이나 이론으로 한계가 지어진다. 하지만 고려 말부터 대한제국까지 이어진 중화는 당시 한반도를 관통하는 주류적 세계관이자 사고방식이었다. 그 시대에 중화가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 차분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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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리 받아들이는 건 정말 이 책을 오독하는 거다. 우리는 역사의 인과관계를 따질 때 너무 몇몇 현상만 과장하거나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그런가. 마찬가지로 중화도 동전의 양면, 아니 수십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물론 우리로선 아쉬운 점도 있다. 좀더 넓은 세계관과 현실인식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과 똑같은 가정이다. 삼국인 모두가 그저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중화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사례를 꼽는다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에 입각해 중화주의를 노예적 사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 학자 이종휘(1731∼1797)만은 ‘요동회복론’을 내세워 단군과 고대사를 자주적으로 이해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요동회복론은 중화적 시각의 산물이었다. 오랑캐(만주족)로부터 중화의 본산 명나라와 계승자인 조선을 지키자는 인식이었다. 중화를 예속적 가치로 판단하는 것도, 여기서 자주나 민족을 읽어내려 하는 것도 이분법적인 접근법이다.”
―역사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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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