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흡 산업부 차장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 CEO들이 지방선거에 대해 입을 닫은 것은 막강한 지방권력을 경험해본 ‘학습효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잘못 보였다가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한 기업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장은 합법적인 인허가를 거부해 ‘시간이 돈’인 기업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울산 북구가 2010년 미국계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가 낸 건축허가 신청을 세 차례 반려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울산시 행정심판위원회가 적법한 절차에 따른 신청인 만큼 건축허가를 내주라고 결정했지만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이번 선거에서 낙선)은 ‘중소상인 보호’를 내세우며 버텼다. 결국 울산시 행정심판위가 행정심판법에 따라 직접 건축허가를 내줘 2011년 말 코스트코 매장을 착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이상 사업이 지연돼 해당 업체는 불필요한 금융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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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를 이끄는 시도지사나 시장 군수는 ‘지역 대통령’이나 ‘지방권력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지역사회에서 ‘갑’ 행세를 하는 지방공무원을 꼼짝 못하게 하는 인사권은 기본이다. 각종 사업 인허가권이나 단속 권한도 갖고 있다. 개발 사업을 별다른 이유 없이 지연시키거나 기부를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권한도 적지 않다. 중앙정부가 개선을 요구해도 주민 여론이나 외부 위원회 핑계를 대고 뭉개면 그만이다. 재계에서는 칼자루를 쥔 단체장이 작정하고 애를 먹이면 견뎌낼 기업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번 선거를 통해 시도지사 당선자 17명과 시장 군수 당선자 226명 등 새로운 지방권력자 243명이 나왔다. 이미 칼자루를 쥐어 본 기존 단체장도 있지만 새로 칼자루를 쥘 ‘정치 신인’도 적지 않다. 이들이 새로 받은 칼을 조심성 없이 휘두르면 기업에는 흉기가 될 수밖에 없다. 당선자 중 상당수가 ‘기업하기 좋은 ○○’나 ‘규제 완화’ 등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약속대로 규제 제거용 메스로만 쓰기를 바란다. 그래야 4년 뒤 신문에서 CEO들이 자유롭게 평가한 지방선거 후보자 기사를 볼 수 있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