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질주 영화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
김성훈 감독은 한국외국어대 헝가리어과 90학번이다. “전공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 대신 수업시간에 공상을 많이 했는데, 그게 영화를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네요.”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영화는 개봉(지난달 29일) 전이었다. 하지만 시사회 직후 호평이 쏟아졌다. 칸 영화제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유쾌하며 신선한 자극을 주는 영화”라며 ‘끝까지 간다’를 감독주간에 초청했다. 우쭐할 만도 하다.
“평가를 많이 봤어요. 하지만 가스 불을 켜 놓고 집을 나온 듯 불안합니다.”
“거창한 이야기보다 재밌는 이야기만 남기자고 생각했어요. 이게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데뷔작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년)이 망했기 때문이다. 충무로에서 데뷔작에 실패한 감독에게는 많아야 한두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 ‘끝까지 간다’는 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데뷔작이 2006년 수능 다음 날 개봉했어요. ‘왜 관객이 안 들지? 다음 주에는 잘 들 거야’라고 착각했죠. 내 자식(영화)이 잘난 줄 알았으니까요. 칭찬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외면하는 걸 보고 안 되는 걸 알았어요.”
이후 그는 망한 영화감독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었다. 처음엔 세상을 원망하고 분노하다가 이윽고 자기반성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일 없이 지낸 지 6개월쯤 됐을 때 직장에 다니던 아내가 임신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끝까지 간다’는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귀향’에서 영감을 얻었다. “딸이 살해한 남자의 시체를 주인공이 묻는 장면을 봤어요. 순간 ‘어, 더 깊이 묻어야 하는데’라고 했죠. 자식의 죄를 덮어줄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에서 이선균은 어머니의 관 속에 차로 친 사람의 시신을 넣는다.
그는 2008년부터 ‘끝까지 간다’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수십 번 다듬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에도 스토리에 구멍이 있잖아요. ‘이 정도면 관객이 좋아하겠지’라고 자만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얼굴을 마주 대한 사람도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설득할 수 있는데, 만난 적 없는 관객을 어떻게 설득하겠어요. 고치고 또 고쳤죠.”
아내는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됐다.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생활비를 줬고 금융권의 힘도 빌렸단다.
“창민은 가장 영화적인 인물인데 완벽하게 구현해 냈어요. 거구이지만 섬세한 배우예요. 연기의 열정이 상대 배우를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살짝 빠질 줄 아는….”
‘끝까지 간다’는 지난달 29일 개봉 이후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이어 일일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다가 2일부터 1위로 올라섰다. 이 영화, 화끈하게 흥행할지는 몰라도 끝까지 갈 것 같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