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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연기 삽시간에… 출구 못찾아 아수라장”

입력 | 2014-05-27 03:00:00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급박했던 사고 당시 상황




“매표소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천장이 까매졌어요. ‘정전됐나’ 싶어서 둘러보는데 뒤쪽 에스컬레이터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어요.”

충남 서산에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 ‘헤브론원형학교’를 다니는 김서준 군(16)은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학교에 가기 위해 26일 오전 경기 고양종합터미널을 찾았다. 무심코 김 군이 시계를 본 건 오전 9시 2분. 바로 그때 솟아오르는 불길을 보고 김 군은 옆에 둔 짐을 챙길 새도 없이 건물 밖 버스승차장으로 뛰어나갔다. 곧 건물은 검은 연기로 휩싸였다.

지하 1층 푸드코트의 CJ푸드빌 리모델링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불길은 순식간에 2층까지 퍼졌다. CJ푸드빌은 올해 초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 임대사업자로 선정돼 종합 관리해 왔으며 이곳에 자사 외식 브랜드뿐만 아니라 미용실 등 여러 가지 편의시설을 입점시켜 7월부터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지하 5층, 지상 7층의 고양종합터미널은 연면적 14만6000여 m² 규모로 시외버스 터미널을 비롯해 영화관과 대형마트 등이 입점한 대형 다중이용시설이다. 불이 났을 때는 지하 2층에 있던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영업을 막 시작하려던 시간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고 터미널을 이용하는 출근 승객들도 대부분 빠져나간 뒤였다. 많은 이용객이 붐비는 시간대였다면 엄청난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영향인 듯 시민들은 “불이야” “피해”라고 서로 외치며 대피를 독려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이날 버스터미널과 대형마트, 영화관 등 건물 안에 모두 700여 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자를 제외한 650여 명이 검은 연기를 보자마자 신속히 건물 밖으로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직전인 오전 9시 1분경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가던 문용찬 씨(33)는 지하 2층에서 덜컹거리며 연기가 조금씩 들어왔고, 지하 3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을 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뿌연 연기가 들어왔다고 했다.

“무작정 ‘닫힘’ 버튼을 눌렀어요. 지상 3층에 도착해서 연기와 함께 기침하며 주차장과 연결된 통로로 뛰어나왔습니다.”

문 씨가 엘리베이터에서 연기와 함께 뛰어나올 땐 3층에서 공사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화재 경보가 울리며 대피 방송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의 경우 ‘화재가 났으니 대피해 주십시오’란 안내 방송이 제때 나와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다. 2층 대합실에 앉아 있던 서지숙 씨(47·여)는 “녹음된 여자 목소리로 ‘화재가 났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주변에 앉아 있던 20여 명이 함께 외부로 뛰어나갔다”고 했다. 스프링클러도 작동해 지하 2층 매장에 있던 사람들 중엔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뛰어나온 이도 있다.

건물 5∼7층에 있는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비상등이 켜지고 타이어 타는 냄새가 퍼지자 “불이야”를 외쳤고, 직원들이 관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는 없었다. 메가박스 측에 따르면 오전 9시 전체 8개 관(1224석) 중 2개 관에서 30여 명이 영화를 보던 중 9시 5분에 화재 사이렌이 울렸다. 지하 2층 홈플러스에선 보안요원들이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외부 인도와 연결된 지상 1층, 버스승차장과 연결된 지상 2층, 터미널 뒤편 주차장과 연결된 지상 3층, 옥상 공원과 연결된 지상 5층 등 건물 구조가 비교적 대피하기 수월한 상태였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지상 2층 매표소 사무실 안과 화장실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데 대해 소방 관계자는 “(사망자가) 매표소 안쪽에 있었고, 화장실에 있던 피해자는 유독가스를 피해 피신하다 고립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면적이 워낙 넓고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 출구를 찾는 데 애를 먹은 시민도 적지 않았다. 오전 9시 15분경 버스터미널과 연결된 백석역에서 내린 회사원 이혁재 씨(28)는 “지하철 내부에 연기가 가득해 카드로 찍고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앞이 안 보였다”고 했다. 이 씨는 목이 아프고 어지러워 병원을 찾았다. 이승연 씨(34·여)도 2층 대합실에서 가방 정리를 하다 조금 늦게 나오며 출구를 찾아 헤맸다. 이 씨는 “출구 방향을 봐놓지 않았으면 나오는 데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옷과 얼굴에는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일산병원, 일산백병원, 명지병원, 일산동국대병원 등으로 나뉘어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고양=강은지 kej09@donga.com·박성진 기자  

◇사망자 명단 △이강수(50·KD운송 고양권 지사장) △김선숙(48·여·KD운송 터미널 매표소 직원) △김점숙(56·여) △김탁(37·중국인) △신태훈(46) △ 정연남(49·여) △이일범(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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