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계엄령 선포]
쁘라윳 짠오차 태국 육군참모총장은 20일 오전 3시(현지 시간) 군이 소유한 TV 방송을 통해 “수도 방콕뿐만 아니라 태국 전역에 계엄령을 발령한다”며 “이번 조치는 국가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쁘라윳 총장은 “기존 치안 조직을 해체하고 군이 치안을 맡는다”며 “국가 안보에 해로운 신문과 방송의 보도도 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령 발표 이후 태국 군인들이 주요 방송국과 관공서를 장악했으며 방콕 중심가 등 시내 곳곳에서 경계근무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충돌은 없었다.
쁘라윳 총장은 이번 계엄령 선포를 쿠데타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질서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을 뿐 과도정부를 전복시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과도정부 측 관계자 역시 “치안을 군부가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군의 계엄령 선포가 과도정부와 아무런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이뤄졌고 정부의 치안 기능을 군이 접수한 ‘사실상의 쿠데타’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부가 치안 유지 임무에서 벗어나 중립적인 인물을 내세워 새 총리로 임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쿠데타를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 BBC 등 주요 외신들은 ‘소프트 쿠데타’, ‘절반의 쿠데타’라고 보도하고 있다. 태국 군부는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18차례 쿠데타를 일으켜 11번 성공하는 등 정치적 혼란에 개입해 온 역사가 있다.
○ 계엄령 선포로 혼란 다소 줄어
계엄령 선포 이후 친정부-반정부 세력이 당장 충돌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실제로 양측은 이날 계획했던 시위를 모두 취소한 채 군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외신들은 방콕 시민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상태라고 전했다. 일부 시민들은 계엄군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문제는 앞으로 군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친정부 세력은 가능한 한 빨리 선거를 치러 새 내각을 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반정부 세력은 선거를 치르는 대신 상원에서 새 총리를 지명해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군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소외된 정치세력이 반발할 것이 분명해 태국 정국은 또 한 번의 소용돌이가 예고돼 있는 셈이다. 실제 친정부 시위대 ‘레드셔츠’ 관계자는 “이번 계엄령의 목적이 시위에 따른 유혈 사태 방지와 치안질서 유지라는 군의 발표를 믿는다”면서 “만약 군이 새 총리를 임명하는 등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계엄령이 선포됐지만 우리 교민들과 여행객들에게는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태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통행이나 통신 등에 특별한 제한이 없고 생활하는 데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면서 “다만 정국이 불안한 만큼 교민이나 여행객이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말과 행동을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