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 291명중 255명이 작년 수입 3000만원 안 돼
바둑계 파이가 줄어들면서 프로기사 중에는 아예 새 길을 찾아 떠나거나 바둑계 내에서도 블루오션을 찾으려 애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달 열린 바둑리그 개막전에서 이창호 9단(왼쪽)이 나현 4단에게 패한 뒤 검토하는 장면. 이세돌 9단(가운데)과 젊은 기사들이 검토에 참여했다. 바둑TV 제공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해 1999년 프로로 입단한 그는 인터넷 보급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신이 잘 아는 바둑과 인터넷을 접목해 2007년 ‘AI바둑’이라는 업체를 차렸다. 북한에서 만든 바둑프로그램 ‘은별’을 받아와 판매를 하고 있고, ‘자동계가’ 시스템을 개발해 타이젬 피망 등에 공급하고 있다. 그는 “남들이 안 하는 인터넷에 한발 먼저 눈을 떠 업체를 운영해왔다. 아직은 힘들지만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5급 공무원(기술직)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한 윤재웅 4단(30)은 요즘 중앙공무원교육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7월에 연수가 끝나면 1년 동안 지방에서 실무 연수를 하게 된다. 그는 “다른 부처도 많지만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16세에 지역연구생으로 입단한 그는 공부 쪽에도 적성이 있어 2007년 24세에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입학했다. 프로 활동과 늦깎이 대학생활을 병행하다 우연히 공무원 시험 설명회에 참석한 뒤 2년여 준비 끝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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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 9단(41)도 중국에서 바둑 보급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이다. 기존의 해외 바둑 보급은 대한바둑협회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김 9단은 자력으로 해외 바둑 보급에 나선 경우. 그는 국내 바둑 보급이 포화상태에 있다고 보고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렸다. 헝가리 출신의 한국기원 프로 코세기 디아나 초단(32)과 함께 2011년 경기 산본에 국제바둑도장인 ‘BIBA’를 차려 22개국에서 온 80명을 가르쳤다. 중국 갑조리그에서 ‘용병’으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는 우한(武漢)에서 바둑 꿈나무들을 지도하는 사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중국의 어린이 바둑 열기를 보면 놀랍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지만 앞으로는 중국 바둑이 국제 바둑계의 큰 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강근 7단(35)은 아예 일반 기업체에 입사한 경우. 그는 게임업체 NHN의 직원으로 게임 관련 업무를 맡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들과는 달리 바둑계에 남아 있으면서 좀 더 세분화한 전공으로 설 자리를 찾는 기사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하진 3단(26)은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국제교류 분야에서 실력을 키워가고 있다. 7월에는 국제바둑연맹(IGF) 사무국장에 취임해 2년간 국제바둑교류 업무를 맡는다. 그는 “앞으로 바둑의 국제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백지희 3단(31)이나 이슬아 3단(23)은 지난해 전국 처음으로 생긴 바둑특성화고인 한국바둑고등학교에서 바둑교사로 일하고 있다.
김세실 2단(26)처럼 3년째 휴식을 하며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7세 때부터 바둑을 배워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15세 때인 2003년 프로 입단의 꿈을 이뤘다. 이후 2006년 여류기성전 준우승, 2008년 정관장배 한국대표 등을 지내며 활약하다 2011년 돌연 휴직계를 냈다. 그는 “바둑에 짙은 회의가 몰려와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다”며 “신촌의 한 중고 서점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월급이 150만 원 정도여서 프로 기사 때보다는 적었지만 좋은 사회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다른 일이란 것도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알고 다시 승부의 세계로 돌아오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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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윤재웅 4단, 한때 서점에서 일하다 바둑계 컴백을 고민하는 김세실 2단, 7월 국제바둑연맹(IGF) 사무국장에 취임하는 이하진 3단(왼쪽부터).
그 이창호 키드들이 지금 바둑계를 주름잡고 있다. 지난달 10일 열린 KB국민은행 바둑리그 개막전(신안천일염-CJ E&M)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기원 내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이창호는 17세나 어린 이지현 4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었다. 이상훈 신안천일염 감독, 한종진 CJ E&M 감독과 이세돌 9단을 빼고는 양 팀 검토실의 기사들은 모두 10대, 20대 프로였다.
승패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이들 ‘토너먼트’ 프로도 사정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상금과 대국료 수입으로 3000만 원을 넘긴 프로는 36명에 불과하다. 바둑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프로는 바둑리그에서 뛰는 이른바 ‘바둑리거’ 64명을 포함해 전체 프로기사 291명 중 80명 정도. 25%쯤 된다.
토너먼트 프로보다 더 어려운 것은 노장 프로들. 승부에서 멀어지다 보니 이들 중 상당수는 예선 대국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예선 대국료는 폐지되는 추세다. 중견기사 K 씨는 “올해부터 예선 대국료가 폐지되는 대회가 늘어나 나이든 기사들의 생계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파이는 줄어드는데 1년에 2명씩 뽑던 프로기사를 12, 13명씩 대폭 늘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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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한국기원 전략기획실장은 “복지수당은 5년간 시험해본 뒤 조정하기로 했는데 젊은 기사들의 불만이 많아 내년에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바둑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 일환으로 한국기원은 전국체전 정식 종목에 바둑을 넣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체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 바둑 교수 수요가 크게 늘어난다. 시도별로 지부를 설치하려면 적지 않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효정 프로기사 회장은 “전국체전에 바둑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고 기전을 확대하는 등 바둑계 파이를 늘리는 데 바둑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프로기사 역대 상금 10걸
하지만 그는 역대 2위. 1위는 이창호 9단이다. 총계 97억여 원.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최연소로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세계대회 23차례를 포함해 모두 140차례 우승했다. 3위는 조훈현 9단으로 38억9000만 원이다. 4, 5, 6위는 각각 최철한 9단(32억5000만 원)과 유창혁 9단(32억4000만 원), 박영훈 9단(25억8000만 원)이다. 7∼10위인 박정환 9단, 강동윤 9단, 김지석 9단, 원성진 9단은 누적 상금이 모두 10억 원대.
▼ 입단은 못했지만… 한국기원 연구생들 바둑판 주변서 맹활약 ▼
바둑만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프로의 길을 가지 않고 사회로 나와 새 삶을 개척한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아마추어 고수들. 한국기원의 정재우 스케줄러(왼쪽)와 월간바둑 김정민 기자.
김 씨는 20대 초반에 입단을 포기하고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다가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월간바둑에 입사했다. 만 3년째 바둑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특히 편집회의에서 자신의 기획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경우는 뿌듯하다. ‘한 판의 바둑 같은 영화이야기’도 그의 아이디어. 영화에 취미가 있고, 글재주도 있는 프로기사들이 쓰는 영화 평이다. 필자 발굴은 오랜 기간 바둑계에 있던 그의 경험에서 나온다. 그는 30세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기타 배우기와 여행, 케이크 만들기 등도 그 같은 노력의 일환.
정 씨가 맡은 스케줄러라는 직무는 일반인에게 생소하다. 한마디로 프로기사들의 대국 일정을 조정하는 업무. 프로기사들은 물론 후원사의 요구도 감안해 일정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꼼꼼한 일처리가 필요하다. 업무 특성상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게 마련이지만 그는 비교적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
연구생 출신의 김지은 사이버오로 기획담당(30)은 “미생과 같은 스토리텔링이 인기를 끌어 바둑계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늘어난 것 같아 반갑다”며 “바둑계 문화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 한국기원 연구생 ::
바둑 사관학교. 1960년대에도 있었으나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1985년. 요즘도 연구생 132명이 프로를 꿈꾸며 매주 토일 조별 리그전을 펼치고 있다. 1군(1, 2, 3조)은 조별로 12명씩, 2군(4, 5, 6조)은 조별 32명씩이다. 조별 리그전에서 성적이 좋은 5명은 상위조로 승급(昇級)하고, 하위 5명은 하위조로 강급(降級)된다. 특히 올해부터는 성적우수자 2명이 프로가 되는 ‘내신입단제’가 부활해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