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호(1973∼ )
삼성시장 골목 끝 지하도
너는 웅크리고 누워 있었지
장도리로 빼낸 못처럼
구부러진 등에
녹이 슬어도 가시지 않는
통증, 을 소주와 섞어 마시며
중얼거리던 누더기 사내,
네가 박혀 있던 벽은
꽃무늬가 퍽 아름다웠다고 했지
뽑히면서 흠집을 냈지만
시들지 않던 꽃,
거기 향기를 심어주는 게
너의 평생 꿈이었다고
깨진 시멘트벽처럼 웃을 때
머리카락 사이로 선명하게
찍혀 있던 망치 자국,
지하도는 네가 뽑힌 구멍처럼
시큼한 녹 냄새가 났지
길상호 시집 ‘모르는 척’(천년의시작)에서 옮겼다. 시집의 화자는 대도시 서울의 구석진 곳에서 죄 지은 듯 겁먹은 듯 몸을 사리고 있는 존재들을 ‘모르는 척’ 앓는다. 자기를 방기하거나 유기된 사람과 동물과 사물의 그 눈물겨운 허름함을 어찌 아는 척할 것인가. 예민한 눈과 여린 심성의 화자는 그들의 상처를, 가풀막진 사연을 몸으로 읽고 앓는 것이다.
화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내, 노숙인 ‘누더기 사내’를 가장 친근한 이인칭 대명사 ‘너’라고 부른다. 사람과 삶에 대한 화자의 깊은 이해와 직정(直情)의 발로일 테다. 남의 일 같지가 않구나. 비정한 장도리가 반드시 피해가리라고 누군들 장담할 수 있을까.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