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논설위원
서울광장의 대자보판에 가장 많이 새겨진 말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였다. 어린 학생들이 차가운 바닷속에 내팽개쳐졌는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못했다. 애도와 반성, 분노와 다짐을 적은 글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린 아들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일이라면 우리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전처’(가칭)를 만들겠다고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 전체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예산도 최우선으로 배정하겠다고 다짐했다. 국가위기 상황의 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부 내에 단일화한 전담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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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국무총리 직속으로, 장관급을 조직의 수장으로 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수장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안전 분야에서 부처 간 조정 및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하자면 장관급으로는 어려울지 모른다. ‘안전 대한민국’의 기틀을 세우는 일이라면 대통령 직속으로 둘 수도 있다.
조직 창설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세월호 참사로 국민이 겪고 있는 집단적 트라우마는 심각한 상황이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 운항 과정의 위법 행위, 구조적인 비리와 초동 대처의 소홀함, 시간대별 조치의 문제점,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부처 간 혼선 등 온갖 문제를 철저하게 따지고 조사한 결과도 참고해야 한다.
새 조직을 만든다고 일거에 ‘안전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계각층의 위기관리 유경험자 및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조직의 목표를 정하고 외국의 사례도 검토해야 한다. 그런 뒤 제대로 일할 전문가들로 조직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최선의 조직을 만들 수 있다.
기구나 매뉴얼이 없어 세월호가 침몰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안전의 생활화’가 더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로 대형 참사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는 여실히 확인됐다. 가정과 학교, 기업이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고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투자도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안전 대책은 교육과 훈련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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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희생자 부모들은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주던 아들딸 생각으로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을까.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드릴 부모님을 잃은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일 터다. 대한민국을 안전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이 304명의 희생자 실종자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