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지난달 28일은 충무공탄신일이었고 그제는 석가탄신일이었다. 일주일 뒤인 15일은 세종대왕 탄생 617돌이다. 그런데 아무리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탄신일’은 올라 있지 않다. 게다가 충무공탄신일은 있는데 세종대왕은 탄신하지 않고 탄생했다. 왜일까.
‘탄신일’이 ‘역전앞’ 같은 겹말이기 때문이다. 탄신이 ‘생일’이므로 탄신일은 ‘생일일’로 쓰는 것과 같다. 겹말은 더러 말뜻을 강조하기도 하고, 알기 어려운 말을 쉬 이해하게도 한다. ‘낙숫(落水)물’처럼 사전에 오른 말도 있다. 허나, 대부분은 문장의 간결성을 해치는 군더더기 취급을 받는다.
‘탄신’을 ‘탄생’과 같은 뜻으로 잘못 생각해 ‘○○○선생 탄신 100주년’ 등의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선생 탄생 100주년’으로 쓰는 게 옳다.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은 위인의 생일이 아니라 탄생, 그 자체이므로.
성탄절을 성탄일로는 바꿔 써도 ‘성탄신일’로는 쓰지 않고, 성탄절에 교회에서 치는 탄일종은 있어도 ‘탄신일종’은 없는 것만 보더라도 ‘탄신일’은 분명 문제 있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말을 선택하는 것은 언중이니. 더 굳어지면 국어사전들이 ‘탄신’의 뜻풀이에 ‘탄생’의 의미도 추가할지 모르겠다.
봄이 봄 같지 않은 요즘이다. 2주일 사이에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세종대왕과 충무공의 생일이 들어 있다. 이분들이 세월호 사건을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지. 어떤 지도자들보다 백성의 눈물에 가슴 아파했던 분들인데….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