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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무책임한 너… 상처받는 사람들… 잘못 인정하는 게 그리 어려운가

입력 | 2014-04-26 03:00:00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하는 것들/라파엘 보넬리 지음/송소민 옮김/372쪽·1만6800원·시공사




한 사람이 한밤에 경찰에 붙잡혔다. 기분 나쁘다고 길가에 주차한 자동차 20대의 사이드미러를 발로 걷어차 부순 혐의. 그런데 오히려 자신이 차주들을 고발할 거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박살낼 때 발을 다쳤다. 치료비를 엄청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싶지만, 세상엔 이런 적반하장이나 후안무치한 행동을 벌이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세월호 사고를 보라. 승객들을 저버리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기계적인 사죄뿐 거짓말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큰소리다. 일부만 그러리라 믿고 싶지만, 관련 공무원이나 회사 관계자도 책임 떠넘기기 바쁘다.

원제가 ‘자기 잘못이다(Selber Schuld)’인 이 책은 바로 그런 모습이 사람과의 관계를 지치게 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오스트리아 지크문트 프로이트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신경학자인 저자는 “오늘날 인류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걸 힘들어한다. 눈앞의 고통이 두려워 타인에게 죄를 전가하거나 자기연민이란 손쉬운 변명의 틀에 빠진다”고 진단했다. 뭔 일이 벌어지면 모두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여기는,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단 것이다.

이는 단순히 거짓말로 위기만 모면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속적인 자기합리화, 더 나아가 자기기만으로 확장된다. 타인에겐 엄격하면서 자기에겐 관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하면서 사실이나 현상 자체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 박사(1856∼1926)는 이를 ‘기억 위조’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식의 자기기만은 ‘도덕’마저 곡해한다. 살인 행위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 버린다). 배후에 양심에 걸리는 게 많을수록 새로운 거짓 도덕은 더 공격적이고 투쟁적이고 전체주의적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죄(잘못)를 짓는데, 문제는 이 죄의 몫이 항상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책은 출발한다. 책임을 부정하거나 타인에게 미루고, 아니면 오히려 과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는 오류를 바로잡고 재발을 방지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패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라. 그래야만 비로소 한 발 나아가 속죄하고 용서하는 치유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고 저자는 다독인다.

이 책은 심리학 서적치곤 구성이 상당히 독특하다. ‘파우스트’ ‘레미제라블’과 같은 인간의 죄를 다룬 문학작품 9편을 뼈대로 삼은 뒤, 여기에 자신이 접하거나 공부했던 관련 상담사례 45건을 엮어 이해를 도왔다. 덕분에 전문적인 설명들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다만 “죄를 받아들임으로써 죄에서 벗어난다”는 식으로 왠지 종교적 선문답처럼 매듭짓는 마무리는 다소 아쉽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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