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림(1954∼ )
산 입구 천막식당에 중년의 남녀가 들어선다
가만 보니 둘 다 장님이다
남자는 찬 없이 국수만 후루룩 말아 먹곤
연거푸 소주잔을 비워대는데
여자는 찬그릇을 더듬어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젓가락을 든다
그릇과 그릇 사이
푹푹 발목 빠지고 무릎 깨지게 했을까
좌충우돌 난감함으로 달아올랐을 손가락 끝
감각의 제국을 세웠을까
그곳은 해가 뜨지 않는 나라
빛이 없어 캄캄하여도 집 찾아 돌아오고
밤이면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느라 가위로 피 묻은 탯줄을 잘랐을 테고
이윽고 얼굴이 불콰해진 남자는
한 손엔 지팡이, 한 손엔 여자 손잡고 제왕처럼 식당문을 나선다
꽃구경 간다
복사꽃 날리고
꽃향기에
어둠의 빛 알갱이가
톡톡,
꽃눈처럼 일제히 터져 나와 눈부시고
소설가 조세희 선생이 엮은 최민식 사진집 ‘열화당 사진문고 22’를 꺼내 본다. ‘부산 광복동, 1962’ 한 건물의 대리석 벽에 기대서서 적선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청년, 두 사람 다 시각장애인이다. 할머니가 건네는 얘기를 청년이 미소를 띤 채 듣고 있다. 이 미소가 잊히지 않았었다. 1962년이면 50년도 더 전. 이후 그 삶에 ‘얼마나 많은 허방다리가’ 있었을까. 그래도 그의 것인 미소는 그를 떠나지 않았을 테다.
화자는 꽃놀이를 갔다가 들른 천막식당에서 역시 꽃놀이하러 온 시각장애인 남녀를 본다. 꽃나무 밑을 거닐며 공중에 휘늘어진 나뭇가지에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꽃을 보고 즐기자는 꽃놀이에 앞 못 보는 사람들이라니. 실례인 줄 알면서도 화자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릇과 그릇 사이’에도 있는 허방다리. 그렇잖아도 삶에는 ‘얼마나 많은 허방다리가’ 있는데 남보다 크게 불리한 조건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이들! 그 삶에 위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 손엔 지팡이, 한 손엔 여자 손잡고’ 식당을 나서는 남자가 ‘제왕처럼’ 보인단다. 화자는 그이들을 통해 ‘꽃향기에/어둠의 빛 알갱이가/톡톡,/꽃눈처럼 일제히 터져 나와 눈부신’ 감각을 깨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