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흡 산업부 차장
정부의 ‘시장 개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듬해 2월 경제기획원은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했다. 승용차와 픽업트럭은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현 한국GM), 1∼5t 트럭과 소형 버스는 기아자동차가 각각 생산하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정부가 차종별 독점 체제를 만들어준 것이다. 정부는 이 조치를 8년 4개월간 시행하다가 1989년 7월 폐지했다. 일각에서는 이 조치로 국내 자동차업계가 1990년대 이후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업체들이 상당 기간 경쟁 없이 지내면서 오히려 대외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내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됐다는 분석과 함께.
최근 업계에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재연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금융처럼 자동차산업에도 관치(官治)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환경부가 주인공이다. 관치 도구는 내년 1월부터 시행하려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이 제도는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적은 소형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대신에 CO₂ 배출량이 많은 중대형차를 사는 사람에게는 부담금을 물리는 것이다. 중대형차 판매가 많은 국내 자동차 시장을 소형차 위주로 재편해 CO₂ 배출량을 줄이자는 취지다.
환경부가 국내 자동차 시장 구조를 소형차 위주로 개편하겠다는 것도 시장을 왜곡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유럽과 일본에서 경차 비중이 높다고 하지만 프랑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징벌적 부담금을 부과하면서까지 경차 판매를 독려하지 않는다. 인위적인 수요 진작이 자체 자동차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소형차 중심 정책을 펼쳤다가 토종 자동차 업체들이 대부분 몰락한 브라질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만난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자살골’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 문제를 시장 원리로만 풀 수는 없는 만큼 연료소비효율 규제 등 정부 개입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수입차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을 왜곡하면 1980년대처럼 부작용만 불러올 뿐이라는 얘기였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료 출신으로 각종 산업정책을 입안했던 그의 말에 무게가 느껴졌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