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에너지 문제를 넘을 수 있나/전창훈 지음/216쪽·1만3800원·부키
산악지대가 거의 없고 바람이 강한 덴마크는 풍력발전기술로 세계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한국사회가 휴대전화나 정보기술(IT)의 성능시험장 역할을 하듯 에너지 산업에서도 그런 역할이 가능할까. 저자는 단기간에 수익을 내려는 ‘냄비기질’만 버리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부키 제공
한국이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임을 강조한 지가 얼마나 오래이던가. 절전 공익광고 캠페인이 한 해라도 빠진 적이 있던가. 그런데도 1인당 석유 소비량은 세계 6위다. 비산유국 중에는 일본, 독일에 이어 3위다. 일본과 독일의 경제력을 감안하면 에너지를 흥청망청 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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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각각 10년 넘게 살았다. 한국에선 KAIST에서 석사를 마쳤고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현재 7년째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 중간엔 미국 프린스턴대 플라스마 물리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10년을 재직했다.
미국은 1인당 석유 소비량 1위(25배럴)지만 산유국이다. 프랑스는 1인당 소비량이 유럽 평균인 10배럴에도 못 미친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80%의 전기를 원자력으로 충당해서다. 그럼에도 전기를 아껴가며 남는 전기를 외국에 판다. 반면 한국은 에너지의 60%를 화력발전에 의존해 1인당 석유 소비량이 16배럴이나 되지만 전기 아까운 줄 모른다.
전기요금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기요금에 비해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4배, 영국은 2배, 프랑스는 1.5배가 높다. 미국과 프랑스, 한국에서 살아본 저자의 피부물가로도 한국이 가장 싸단다.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독일의 밤거리는 너무 어두워서 보행이 불편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에너지 부담을 체감하지 못한다. 1963년부터 2012년까지 50년 동안 대학등록금은 200배 가까이, 물가는 100배 이상 올랐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고작 27배다. 북한과 휴전 상태의 대치 상황이 60년 넘게 지속되면서 ‘안보불감증’에 걸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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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술을 터득하려면 프랑스처럼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경제와 문명의 체질을 바꿔야만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원자력 확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기 힘들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정치권에 본질적 대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가 택한 길은 국민의 에너지IQ를 높이는 것이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은 에너지와 관련정보를 알기 쉽게 풀어주는 데 할애됐다. 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에디슨이 좋아한 직류와 그의 조수였던 테슬라가 좋아한 교류의 차이는 뭔지, 원자력 태양력 풍력 조력 수소에너지의 원리는 어떻게 다른지를 거창한 물리학 이론을 동원하지 않고 쉽게 설명한다.
몇 가지 단문을 인용하겠다. 에너지는 기계의 밥이다.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까지 전기가 가는 데 0.1초도 안 걸린다. 가벼운 석유가 더 비싸고 좋은 석유다. 경수는 우리가 마시는 물이다. 우라늄 농축도가 발전용은 4%인 반면 폭탄용은 90% 이상이다.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가려는 현상을 엔트로피가 높아진다고 표현한다….
간결한 비유와 예시를 들어 에너지 문제의 문외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에너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엄격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에너지산업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위험을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투자가 필요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에너지 공약을 ‘매의 눈’으로 감시할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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