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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25세 日 법학부 대학생이 쓴 ‘일본 헌법을 구어체로 번역해보면’

입력 | 2014-04-12 03:00:00

평화헌법 필요성 대화하듯 설명… 열도 서점가 조용한 돌풍




일본 서점 신간 코너의 헌법 관련 책 4권 중 세 번째 책이 ‘일본 헌법을 구어체로 번역해보면’이다. 표지부터 다른 3권의 책과 사뭇 다르다. 훗카이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서점에 최근 헌법 관련 신간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9일 홋카이도(北海道) 출장길에 들른 서점의 신간 코너에는 약 50권의 책이 꽂혀 있었는데 그중 헌법 관련 책 4권이 나란히 자리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쟁 수행 가능 국가가 되기 위해 헌법 9조를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기 위해 헌법 해석을 변경하고자 하면서 관련 서적도 덩달아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점원에게 어느 게 가장 인기가 있는지 물었더니 ‘일본 헌법을 구어체로 번역해보면’이란 책을 추천했다. 만화가 그려진 책 표지는 헌법의 근엄한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저자 쓰카다 가오루(塚田薰) 씨는 현재 25세. 지난해 7월 책을 냈을 때 그는 아이치(愛知)대 법학부 학생이었다. 헌법 권위자도 아닌데 어떻게 헌법 서적을 쓸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이 재밌다. 헌법 관련 수업 시간에 친구가 “헌법이란 대체 뭐야”라고 물어 법조문을 대화체로 바꿔 쉽게 설명해줬더니 반응이 예상 이상으로 좋았단다. 용기를 얻어 인터넷 사이트에 ‘일본 헌법을 구어체로 번역해보면’이란 코너를 만들어 헌법을 구어체로 옮겼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사히신문이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책으로 내자”는 요청이 들어왔다. 인터넷에 마음 편하게 올릴 때와 달리 활자화된다는 것은 꽤 부담이 컸다. 인터넷에 올린 내용을 재점검해 다시 썼다. 그리고 아이치대 법학부 나가미네 노부히코(長峯信彦) 교수에게 감수도 받았다.

책 내용은 단순하다. 일본 헌법의 전문부터 11장까지 원문을 적고 그 옆에 구어체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헌법 제1장 제1조는 ‘천황(일왕)은 일본의 상징으로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總意)에 기반한다’라고 돼 있다. 쓰카다 씨는 그 옆에 “일본의 주권은 국민이 쥐고 있는 거야. 그래서 가장 위대한 이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지. 천황은 일본의 상징으로 하나로 뭉친 국민을 보여주는 아이콘 같은 거야”라고 설명했다.

1부에서 헌법 조문을 구어체로 옮겼고 2부에선 헌법 관련 기초 지식을 열거했다. 일본 헌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헌법 9조는 왜 중요한가, 여성 천황에 대해 이 정도는 알아두자 같은 내용이다.

그중 헌법 9조의 중요성을 설명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쓰카다 씨는 일본 헌법이 ‘전쟁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데에서 더 나아가 ‘국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포기한다. 그러기 위해 군대 자체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명기한 헌법은 전례를 보기 힘들다. 하지만 저자는 ‘인권 보장’과 ‘전쟁 포기’를 하나의 세트로 묶은 ‘획기적’인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쓰카다 씨는 아베 정권의 최근 개헌 움직임을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일본 헌법의 조문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개헌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책을 읽으면 자연히 ‘군대를 가지지 않고서도 평화로운 국가를 유지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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