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리앤더 카니 지음·안진환 옮김/420쪽·2만 원·민음사
대학 졸업 후 런던 디자인회사에 다니던 아이브가 애플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10년 후 유행할 제품을 구상하는 애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애플은 세계의 유망한 디자이너들과 협업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고, 여기서 두각을 드러낸 아이브를 발탁한 것이다.
27세에 애플에 입사한 아이브는 아이맥부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까지 ‘i’로 시작되는 히트상품을 내놓는다. 아이브의 성공으로 애플은 기술이 아닌 디자인이 주도하는 기업이 됐다. 기술자들은 지금 가능한 기술에 제한을 받지만, 디자이너들은 미래에 가능한 무엇을 상상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브는 경쟁사들이 칩의 속도나 성능 향상에 주목하는 동안 ‘사람들이 이 제품을 어떻게 느끼기를 바라는가’를 고민하며 제품에 감성을 입혔다.
성격이 좋은 점을 빼면 아이브는 사고방식까지 스티브 잡스와 판박이다. 이 책도 ‘스티브 잡스’(2011년)와 출판사가 같고 표지도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라는 부제를 빼면 거의 같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 같은 평전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것이다. 최고의 전기 작가가 주인공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집필한 ‘스티브 잡스’와 달리 이 책은 IT 전문기자가 ‘며느리도 모르는’ 애플의 무시무시한 비밀주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 취재한 내용을 엮었다. 천재 디자이너 얘기를 하면서 작품 사진이 부실한 점도 아쉽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