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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인디오의 감자’

입력 | 2014-04-12 03:00:00


‘인디오의 감자’
윤재철(1953∼)

텔레비전을 통해 본 안데스산맥
고산지대 인디오의 생활
스페인 정복자들에 쫓겨
깊은 산 꼭대기로 숨어든 잉카의 후예들
주식이라며 자루에서 꺼내 보이는
잘디잔 감자가 형형색색
종자가 십여 종이다

왜 그렇게 뒤섞여 있느냐고 물으니
이놈은 가뭄에 강하고
이놈은 추위에 강하고
이놈은 벌레에 강하고
그래서 아무리 큰 가뭄이 오고
때아니게 추위가 몰아닥쳐도
망치는 법은 없어
먹을 것은 그래도 건질 수 있다니

전제적인 이 문명의 질주가
스스로도 전멸을 입에 올리는 시대
우리가 다시 가야 할 집은 거기 인디오의
잘디잘은 것이 형형색색 제각각인
씨감자 속에 있었다      
        


작가 이완 씨의 설치작품 ‘각자의 자리’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 같은가?”

미국의 석학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 교수가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리 전 총리는 부정적 견해를 내놨다. 중국은 13억 인구의 단일 인종 국가로서, 이민에 개방적인 미국이 세계 70억 인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인재를 융합하면서 뿜어내는 창조력을 이기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다. 동질성을 강요하는 문화보다 이질적 집단에 대한 개방적 자세가 번영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주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강대국의 비밀’에선 세계를 주름잡은 제국의 성공 비결로 ‘다름’에 대한 포용을 꼽았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역사학자 폴 케네디 씨는 “관용이란 나와 다른 종교 생활방식 문화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불관용은 우리를 약화시킨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영국과 비슷한 규모의 섬나라이고 제조업도 한발 앞서 있었으나 영국과 같은 규모의 패권국가가 될 수 없었던 것이 그 실례라는 거다. 피부색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를 받아들인 영국과 달리 일본은 다른 문화와의 융합을 원치 않고 ‘다름’을 차별의 근거로 이용했다. 그렇게 철저히 자기에 동화시키려 한 것이 한국의 근대사에서 보는 바다.

윤재철 시인의 ‘인디오의 감자’는 형형색색 감자가 소중한 이유를 들려준다.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면 수확량 많은 한 품종만 심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그래서 가뭄에, 추위에, 벌레에 강한 감자를 모조리 내쳤다면 잉카의 후예들 역시 살아남지 못했을 터다. 저마다 다른 씨감자의 가치는 문명의 질주에 대한 처방전이자 다양성을 보듬지 못하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 같다. 작가 이완 씨는 최근 개인전에서 인상적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30명을 만나 각자가 인식하는 1cm를 그려 달라 주문했다. 이를 기준 삼아 1m 길이의 줄자와 국제 표준 규격 의자를 만들었다. 서른 개의 들쑥날쑥한 줄자와 의자는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 기준을 갖고 있는지, 쉽게 ‘우리’란 울타리에 묶어놓은 개인의 생각이 얼마나 천차만별인지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의 뿌리는 나의 1cm와 타인이 생각하는 1cm가 다르다는 것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이런 감자 저런 감자가 제 소임을 다해 인디오의 생존을 도왔듯이 ‘다름’을 이유로 거부하고 미워하는 것들이 되레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