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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성원]개성으로 간 이팝나무

입력 | 2014-04-05 03:00:00


요즘 서울 청계천길을 걷다 보면 타원형의 긴 잎자루에 원뿔 모양의 흰색 꽃잎을 머금은 이팝나무를 자주 만날 수 있다. 꽃이 피는 5, 6월에 멀리서 보면 나무에 눈이 소복소복 쌓인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기저기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 놓은 모습이다. 벼농사가 잘되면 쌀밥(이밥)을 먹는다고 이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說)도 있고,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기 때문에 이팝이라 했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우리 조상들은 이팝나무의 꽃피는 모습을 보고 한 해 벼농사의 풍흉을 짐작했다. 치성을 드리면 그해 풍년이 든다며 신목(神木)으로 받들었다. 이팝나무꽃은 모내기철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도 했다. 옛날 전북 진안의 한 마을에선 어린아이가 죽을 때 무덤 곁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아이가 저세상에서나마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통일부가 3, 4일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기증받은 이팝나무 7000그루를 개성공단 인근 민둥산에 심었다. 2005∼2007년, 2010∼2012년에도 개성공단에 나무를 심었는데 지난해에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로 심지 못했다.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조치로 대북 신규 투자나 경제협력 사업은 모조리 금지됐다. 그래도 조림 지원은 예외일 만큼 나무 심기는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드레스덴 통일구상을 통해 “농업 생산 부진과 산림의 황폐화로 고통받는 북한 지역에 복합농촌 단지를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북한은 식량 증산을 위해 나무를 베고 다락밭을 만드는 바람에 산에 나무가 사라졌다. 나무가 없으니 여름철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 토사를 쓸고 내려와 강바닥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비가 오면 쉽게 홍수로 이어진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나무 심기를 전 군중적으로 벌여 숲이 우거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무를 심으려면 묘목이 필요하고 나무가 잘 자라려면 기술 지원이 따라야 한다. 개성으로 간 남쪽의 이팝나무가 고봉밥 같은 꽃을 피우듯 북한 주민들의 밥상도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