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도 벚꽃 같은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봄에 새 시즌을 맞이하면 ‘드디어 터졌구나’(기대하는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야구팬들 용어) 싶다가도 여름이 찾아오면 다시 평범해진 선수들입니다. 가을에 더 잘하면 LG 유원상(28)처럼 “전어가 돌아왔다”며 팬들이 반길 텐데 봄에만 잘하면 아쉬움만 남게 마련입니다.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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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지난해에는 이숭용의 등번호(10번)를 물려받은 팀 후배 이성열(30)이 미스터 에이프릴이었습니다. 이성열은 4월 23일까지 홈런 6개로 단독 선두였지만 왼손 투수에게 약점을 드러내 18홈런(8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오른손 투수에게 홈런 15개를 때리는 동안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3개밖에 못 때려낸 탓입니다.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원조 미스터 에이프릴은 이성열의 데뷔 팀 LG에서 뛴 박준태(47·현 LG 코치)일 겁니다. 박준태는 1993년 4월에 타율(0.417), 출루율(0.509), 장타력(0.708), 최다 안타(20개), 도루(10개) 등 공격 5개 부문에서 1위였습니다. 시즌 중반까지 이름이 비슷한 롯데 박정태(45)와 타격왕 경쟁을 벌였지만 최종 성적은 0.267로 19위였습니다. 광주일고 재학 시절 투수와 포수를 겸업하기도 했던 ‘야구 천재’ 박준태는 만 31세에 은퇴하면서 야구 인생마저 벚꽃처럼 저물었습니다.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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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이렇게 야구 기록은 누군가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를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차가운 숫자가 아니라 뜨겁게 살아 숨쉬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그 덕에 야구는 아버지와 아들이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분야이기도 합니다.
물론 야구 기록이 필드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속살을 보여줍니다. 비키니 수영복처럼 말입니다(메이저리그 감독을 지낸 토비 하라의 말). 그래서 벚꽃 지는 이 계절에 서둘러 여러분께 ‘베이스볼 비키니’를 선보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