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받은 日 ‘종이 건축가’ 반 시게루 교수
‘난민을 위한 종이 건축가’ 반 시게루는 도요타자동차에 다니는 아버지와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어머니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뒤 미국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그는 환경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30년 전부터 종이나 컨테이너처럼 싸고 구하기 쉬우며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재료를 연구해왔다. 프리츠커상 수상에 대해선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더욱 성장하라는 뜻에서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 시게루 제공
3차원(3D) 기술까지 동원해 번쩍이는 랜드마크 짓기 경쟁을 벌이는 시대에 종이로 소박한 작업을 하는 건축가가 세계 최고 권위의 건축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은 본인에게도 뜻밖이었다고 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이 상의 심사위원을 했기 때문에 수상자를 어떤 식으로 선정하는지 잘 압니다. 지금까지는 유명한 순서대로 수상자를 선정해왔어요.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 건축가를 선정하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합니다. 제가 역대 수상자들처럼 유명 건축가여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거만해지거나 일을 늘려 자원봉사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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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본격적으로 종이 건축을 하게 된 것은 1994년 르완다 내전 때 200만 명의 난민을 위해 종이 피난소를 개발하면서부터다.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때 반 시게루가 지은 종이 성당은 이 도시 재건의 상징이 됐다. 스티븐 구드너프 촬영·하이엇재단 제공
그는 1995년 비정부기구인 VAN(건축가 자원봉사 네트워크)을 설립해 20년간 세계 곳곳의 재난 지역을 돌며 종이로 대피소를 지어왔다. 2008년 중국 쓰촨 대지진 때는 종이학교를,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때는 종이성당을 지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1800개의 종이 파티션을 설치해 이재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기도 했다.
일본은 올해까지 6회에 걸쳐 7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은 한 명도 없다. “저는 고교까지 일본에서 지냈지만 이후로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해외에서 일해 왔습니다(그는 도쿄 뉴욕 파리에 사무실이 있다). 저를 일본 건축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도 김수근 선생님처럼 훌륭한 건축가가 많았지요. 다만 이분들이 빨리 돌아가시면서 제자 양성 작업에 공백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은 후학 양성의 전통과 함께 훌륭한 건축가 계보가 이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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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경기 불황 탓에 일거리가 없어 힘들어하는 후배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저는 1994, 1995년 일이 별로 없어 자원봉사를 하면서 지금의 건축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일이 없을 땐 자원봉사를 하면 어떨까요. 값싼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지요. 쉴 때를 잘 활용하면서 다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이진영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