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匠人의 공방에서 길어올린 ‘현대의 연금술’

입력 | 2014-03-25 03:00:00

日 도쿄서 열린 ‘콘덴세이션’전




프랑스 에르메스 재단에서 기획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콘덴세이션’전이 일본 도쿄에서 개막했다. 프랑스를 비롯해 한국 일본 등의 신진 작가 16명과 가죽과 크리스털 등 각 공방 장인들의 교감과 소통을 기반으로 완성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에르메스 재단 제공 ⓒNacasa & Partners Inc

거대한 훌라후프처럼 생긴 4m가 넘는 원 구조물도 소리를 공간적으로 표현한 원뿔 형태 작품도 소재는 가죽이다. 귀를 대면 아련한 소리가 들리는 나팔 모양의 조각과 화사한 천으로 장식한 침대 설치작품은 정밀한 수공작업을 요구하는 크리스털과 실크 천이다.

19일 오후 6시 일본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 내 전시공간 ‘르포럼’에서 개막한 ‘콘덴세이션(Condensation·응결)’전에 나온 작품들이다. 겉보기엔 흔히 보는 개념적 설치 작업 같은데 이모저모 살펴볼수록 소재와 디테일이 범상치 않은 격조를 풍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에르메스 재단이 신진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2010∼2013년 가죽과, 텍스타일 등 각 분야 공방에서 진행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결실을 소개한 전시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맛을 첨단 조형언어로 번안해 참신한 수확물을 길어 올리는 ‘현대의 연금술’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날 참석한 카트린 체크니스 재단 디렉터는 “젊은 작가에게 최고급 재료와 최고의 테크닉을 창작에 접목할 기회를 주고, 틀에 박힌 작업에 익숙한 장인에게 기술을 활용하는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한국의 오유경 씨를 비롯해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의 작가 16명이 6개월 동안 공방에서 호흡하며 완성한 16점을 선보였다. 작년 여름 파리의 ‘팔레 드 도쿄’ 미술관에 첫선을 보인 뒤 6월 30일까지 ‘르 포럼’을 거쳐 9월에 재개관할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첫 전시로 서울에 온다.

○ 예술가와 장인의 대화

금속을 세공하는 ‘퓌포카’ 공방에서 6개월간 작업한 한국 작가 오유경 씨는 장난감 블록처럼 생긴 금속도형을 쌓아올린 ‘달의 탑’을 선보였다. 도쿄=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재단은 리처드 디콘, 주세페 페노네 등 저명한 중진작가의 추천을 받아 참여 작가를 선정했다. 젊은 작가들은 이제껏 접하지 못한 재료를 다루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400여 년 전통의 생루이 크리스탈 공방에서 작업한 일본 작가 고히라 아쓰노부 씨(35)는 “낯선 소재를 발견하고 여기에 적응하는 방법을 익힌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유리의 투명성과 소리의 공명을 버무린 작품에선 빛과 사운드의 조화가 돋보였다. 실버 공방에 배정된 오유경 씨(34)는 장난감 블록처럼 생긴 은도금 도형을 탑처럼 쌓아올린 작품을 내놨다. 그는 “15명의 공방직원과 친구처럼 친해졌다”며 “쇠를 깎거나 윤을 내거나 엄격한 수작업을 고수하는 장인의 마음과 정신을 배운 것이 수확”이라 말했다.

○ 과거와 현재의 대화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가엘 샤르보 씨는 “수증기가 액체인 물로 변하듯 전시 제목은 예술가와 장인의 만남이 가져온 변화를 뜻한다”며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공방에 들어가 장인이 보여준 재료에 대한 정성, 광적인 수준의 정확성과 상세함을 관찰하고 배우면서 작가들은 작업의 전환점을 맞이한다”고 말했다.

장인의 기술력과 예술가의 창조적 영감의 유대를 공통분모로 하지만 작품마다 편차가 있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앞세우지 않은 장인의 노동이 현대미술의 언어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는 충분히 보여준다. 중요무형문화재 129개 종목 중 자칫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게 38%에 이른다는 한국의 현실. 선대가 물려준 긍지와 기술을 지키는 장인의 땀방울과 가치를 존중하는 풍토, 과거와 현재의 짝짓기 프로젝트가 새삼 부러운 이유다.

도쿄=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