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목 스님 진행 인터넷 유나방송 찾은 이색손님… 장익 주교와 이창재 감독 라디오 방송 진행자와 애청자로 만나 23년째 인연 이어오는 스님과 신부님 말기암 환자 다큐 찍는 李감독도 합류
서울 창의문로의 한 명상센터에서 만난 이창재 감독, 장익 주교, 정목 스님(왼쪽부터). 이들은 “사람들이 생로병사 중 생만 반기고 ‘노병사’는 애써 피하려고 한다”며 “아름다운 삶을 위해 노병사에 관한 고민과 대화가 절실 하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스님 같다는 분도 있어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로만 칼라 차림의 노신부와 스님, 영화감독이 어색하지 않게 공양게(供養偈)를 함께 읽은 뒤 수저를 들었다. 들깨를 넣은 쑥국과 봄나물 식단이다.
장 주교와 정목 스님의 인연은 22년 전인 1992년으로 거슬러 간다. 장 주교가 스님이 진행하던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의 애청자가 된 것. 목소리만으로 팬이 된 당시 장 신부는 정목 스님과 가까운 지인을 통해 점심을 사고 싶다고 연락했다.
장 주교는 ‘왜 다른 종교인들과 가깝게 지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불교와 가톨릭은 발심해 수행하고, 대중과 같이 생활하고, 본사나 교구 같은 소속감이 있다는 게 비슷하죠. 형식은 다르지만 의식을 치르면서 기도도 하죠.”(장 주교)
“발심, 수행, 대중, 모두 불교적 언어인데요.(웃음)”(정목 스님)
“가끔 대화하다 저보고 스님 하며 농하는 분도 있는데 잘 봐주신 거죠. 그 말이 싫지는 않아요. 하하.”(장 주교)
○ 인연은 돌고 돌아…
이들의 인연은 요즘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이 감독에게 이어졌다.
‘길 위에서’를 관람한 뒤 홍보대사를 자처한 정목 스님은 지난해 8월 도반 혜욱 스님이 주지로 있는 춘천 봉덕사에서 법문 요청이 들어오자 극장에서 신도들과 영화를 본 뒤 법문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장 주교를 정목 스님은 이 감독에게 소개했다.
“제 마음의 ‘방어막’이 좀 단단한 편인데 가장 빨리 마음을 뺏은 분이 정목 스님이죠(웃음). 8개월 가깝게 경기도 포천에 있는 가톨릭계 호스피스 병원 문을 두드렸는데 실패했어요. 영화를 포기하려 할 때 주교님 도움으로 촬영을 시작해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이 감독)
“탄생만큼 죽음도 귀해요. 본인에게 쉬쉬하는 죽음이 어디 있습니까? 누가 대신 죽어줍니까. 그 사람의 인생이죠. 하느님도 대신 못 살아줘요.”(장 주교)
“불교는 죽음을 경사로 봐요. 주교님 말씀이 법문 같아요.”(정목 스님)
“세상이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즐거움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준치가 높아져 힘들어하고 쉽게 목숨을 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이 감독)
장 주교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땅에서 나오려면 죽을힘을 다한다”며 “삶의 모든 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창가 밖 뜰에는 노란 복수초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장 주교는 “온통 좋은 일만 있어서는 인생의 스토리가 엮어지지 않아요”라고 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