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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선언의 ‘한국 독립 결의’ 누가 이끌었나

입력 | 2014-03-19 03:00:00

“김구-장제스” → “이승만-루스벨트” → “김구-장제스 功 확인”
한시준 교수 中사료 발굴 재반박




수많은 약소 식민지 중에서 유독 한국의 독립만을 명시적으로 약속한 카이로 선언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 문’ 이었다. 앞줄 왼쪽부터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3개 연합국의 수뇌인 장제스 중국 총통,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동아일보DB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최초로 결의한 카이로 선언(1943년 11월 27일).

연합국 수뇌(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장제스 중국 총통,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로부터 이 선언을 이끌어낸 공은 김구의 몫일까, 이승만의 몫일까.

학계에선 카이로 선언에 한국 독립조항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주도했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그동안은 장제스(蔣介石) 역할론이 정설로 여겨져 왔다. 김구가 장제스의 마음을 움직여 한국 독립 보장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김구와 조소앙 등 임정 요인이 카이로 회담을 넉 달 앞두고 장제스를 만나 지지를 요청해 “힘써 싸우겠다(力爭)”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임정 측 기록이 근거다.

하지만 최근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을 필두로 한 일부 학자들이 미 국무부 자료와 루스벨트의 아들 엘리엇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루스벨트가 한국 독립에 적극적이었고 장제스는 수동적, 소극적으로 찬성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나아가 루스벨트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서신을 보내는 등 외교적 노력을 한 이승만의 공이 컸다는 것이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사학)는 이를 반박하는 중국 측 사료를 발굴했다. 중화민국(대만) 국민당 당사(黨史)위원회가 1981년 펴낸 ‘중화민국중요사료초편(初編): 대일항전시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의 전시 외교기록을 모은 이 사료에는 카이로 회담 중국 측 의제 초안과 장제스의 비서장 왕충후이(王寵惠)가 남긴 회담일지가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회담 준비 단계부터 한국 독립 승인을 중요 의제로 다뤘다. 실무부서인 군사위원회 참사실이 장제스에게 보고한 의제 초안에는 일본의 항복 이후 취할 조치로 ‘중국 영토 회복’ 항목 바로 다음 순서로 ‘조선 독립 승인’을 명시해 비중 있게 꼽았다.

국방최고위 비서청이 장제스에게 보고한 연합국과의 군사·정치·경제 부문 합작방안 문건에서도 조선 독립을 정치 부문 첫머리에서 언급했다. “중국 미국 영국 소련이 즉시 조선 독립을 공동 혹은 개별적으로 승인하거나 전후 조선 독립을 보장하는 선언을 한다”고 구체적 방안도 명시했다.

카이로 회담 일지는 중국이 한국 독립에 소극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1월 23일 루스벨트와 장제스의 양자 회담을 통해 만들어진 선언문 초안에는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만든다’는 문구가 담겨 있다. 영국은 인도 독립을 의식해 이를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게 한다’로 수정하자고 제안했다가 아예 선언문에서 한국 관련 조항을 삭제하자고 나섰다. 이에 왕 비서장은 “일본 대륙 정책은 조선 병탄에서 시작됐는데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게 한다’고만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원안 수정 불가를 고수한다. 한국 독립 보장 조항이 카이로 선언에서 통째로 삭제될 위기를 중국이 나서 막아준 것이다.

1956년 대만 정부가 미국 국무부에 제공한 루스벨트-장제스 양자 회담 기록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국과 인도차이나 태국 등의 미래 지위에 대해 중국과 미국이 상호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장제스가 동의하며 한국에 독립을 부여할 필요성을 ‘강조했다(stressed on)’”고 적혀 있다.

한 교수는 “중국은 소련이 먼저 한국 독립을 승인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한국 독립에 적극적이었던 측면도 있다”면서 “그럼에도 장제스를 직접 만난 임정 요인들의 외교가 카이로 선언문에 한국 독립 보장 조항을 포함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다음 달 13일 서울 용산구 임정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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