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인(1967∼ )
사거리 한적한 귀퉁이에서 돌가루를 뒤집어쓴 돌
돌부처와 돌예수와 돌사자와 돌코끼리와 돌소녀가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석재상 마당은 절이었다가 교회였다
가 아프리카 들녘이었다가 수줍은 소녀가 사는 외딴 집으로 변한다
한 반의 아이들이 지키고 있는 돌 부스러기는 염주와
묵주와 털과 상아와 젖가슴이 되지 못하고 빛의 산란을 일으킨다
콜록콜록 돌 깎는 사람이 오래된 기침을 하면서 한반의 아이들에게 오래된 천식을 가르친다
오래 입은 옷이 해지는 것을 가르치고 그 옷을 기워 입는 것을 가르친다
작은 돌에서 더 조그맣게 떨어져 나온 돌을 오래오래 보는 눈빛을 가르친다
아픈 몸을 끌고 가면서도 가끔은 되돌아보는 눈빛을가르친다
인가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거리일 테다. 트럭이나 시외버스가 매연을 뿜으며 쌩하니 지나갈 테다. 그 한적한 귀퉁이에 잡다한 석상들이 서 있는 석재상 마당. 메마르고 쓸쓸한 풍경에 시인은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돌부처와 돌예수와 돌사자와 돌코끼리와 돌소녀가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단다. 고만고만한 석상들이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다’는 한마디에 순식간 온기가 돈다.
열어 놓은 창으로 살랑살랑 순한 바람이 불어오고 라디오는 벌써 ‘4월의 사랑’을 노래한다. 자잘한 글 한 편을 쓰면서 몸을 뒤틀고 “돌에서 물을 짜내는 것 같네!” 비명을 지르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