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희 번역가
얼마 뒤 그녀와 나를 포함해 네 친구가 짧은 여행을 떠났다. 민상이를 보내고 마음이 허전할 친구를 달랠 겸 계획한 일본 여행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아름다운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들을 더 그리워할까 걱정도 됐다. 우리는 같은 방을 썼는데, 아닌 게 아니라 친구는 그곳에서도 휴대전화를 붙들고 훈련소 홈페이지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즘은 훈련소에서 훈련 일정은 물론이고 식단까지 상세히 알려준다고 했다. 나는 옆에서 그녀가 울면 위로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친구는 오히려 밝은 표정이었다. 눈물도 많은 사람이 어쩐 일이람.
도쿄에 45년 만의 대설이 내렸다는 그날 호텔방에 앉아 민상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아들을 훈련소에 보낸 뒤 매일 울면서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훈련소에 홀로 쓸쓸히 왔던 청년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순간 ‘내가 호강에 겨워 이러지’라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혼자 입소한 청년들은 집에 아픈 가족을 두고 왔을 수도 있고,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울 수도 있고, 말 못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뿐인가. 몸이 아파 군대에 못 가는 청년들도 있다. 그런데 내 아들 민상이는 군에 갈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훈련소까지 가서 배웅하고 집에서 기다려 줄 가족이 있잖은가. 아들이 그 귀한 복을 누리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울고 있다니.’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자 이전보다 더 큰 울음이 터져 나왔단다. 보고 싶은 아들 때문이 아니라 여러 걱정을 안고 혼자 훈련소에 도착해 두리번거리며 고개 숙이던 그 아이들 때문에 울었다고 했다. 새파란 나이의 그들이 안은 염려와 아픔 때문에 친구는 통곡했다. 그러고 나니 아들 걱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다른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채워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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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희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