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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공경희]아들을 군에 보낸 어느 엄마 이야기

입력 | 2014-03-08 03:00:00


공경희 번역가

얼마 전 친구 아들 민상이가 군대에 갔다. 민상 엄마와는 20년 전 영국에서 처음 만나 지금껏 친구로 지낸다. 당시 민상이는 두 살이었다. 그 꼬마가 어느새 입대할 나이의 청년이 되다니. 세월이 아득히 느껴졌다. 유난히 곰살궂은 아들이라 친구는 예전부터 아들이 군대 갈 때도 따라가 부대 앞에 방을 얻어 살고 싶다고 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마음을 훤히 읽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입대일이 다가오자 친구는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입대 당일 나는 휴대전화로 ‘오늘 민상 엄마 생각을 많이 했어요’라는 짧은 글을 보냈다. 아들을 낯선 곳에 보내는 두려움과 허전함이 짐작되기에 겉치레 인사 아닌 깊은 공감과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내게는 누구를 ‘많이 생각한다’가 그런 말이다. 짧은 문장에 담긴 마음이 이십 년 지기지우(知己之友)에게 전해지리라 기대했다. 그녀는 ‘잘 보내고 왔다’는 답신과 함께 사진을 보내줬다. 훈련소 앞에서 아들을 안고 우는 사진. 민상 엄마가 그 밤을 어떻게 지낼지 걱정됐다.

얼마 뒤 그녀와 나를 포함해 네 친구가 짧은 여행을 떠났다. 민상이를 보내고 마음이 허전할 친구를 달랠 겸 계획한 일본 여행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아름다운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들을 더 그리워할까 걱정도 됐다. 우리는 같은 방을 썼는데, 아닌 게 아니라 친구는 그곳에서도 휴대전화를 붙들고 훈련소 홈페이지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즘은 훈련소에서 훈련 일정은 물론이고 식단까지 상세히 알려준다고 했다. 나는 옆에서 그녀가 울면 위로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친구는 오히려 밝은 표정이었다. 눈물도 많은 사람이 어쩐 일이람.

도쿄에 45년 만의 대설이 내렸다는 그날 호텔방에 앉아 민상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아들을 훈련소에 보낸 뒤 매일 울면서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훈련소에 홀로 쓸쓸히 왔던 청년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순간 ‘내가 호강에 겨워 이러지’라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혼자 입소한 청년들은 집에 아픈 가족을 두고 왔을 수도 있고,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울 수도 있고, 말 못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뿐인가. 몸이 아파 군대에 못 가는 청년들도 있다. 그런데 내 아들 민상이는 군에 갈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훈련소까지 가서 배웅하고 집에서 기다려 줄 가족이 있잖은가. 아들이 그 귀한 복을 누리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울고 있다니.’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자 이전보다 더 큰 울음이 터져 나왔단다. 보고 싶은 아들 때문이 아니라 여러 걱정을 안고 혼자 훈련소에 도착해 두리번거리며 고개 숙이던 그 아이들 때문에 울었다고 했다. 새파란 나이의 그들이 안은 염려와 아픔 때문에 친구는 통곡했다. 그러고 나니 아들 걱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다른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채워졌다고 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 아이가 어려움을 피하고 힘든 세상을 남보다 잘 헤쳐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이상하게 불안이 더 커진다. 그러면 기도가 부족한가 싶어 더욱 기도에 매달린다. 민상 엄마도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내 아들’ 아닌 ‘남의 아들들’을 마음에 품고 나서야 아들 걱정을 지우고 마음의 평온을 맛보았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을 향한 울음이야말로 참된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울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미 노릇이다. 이 사회의 어른 노릇이고, 이 세상의 인간 노릇이다. 안쓰러운 남의 자식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이 각박한 세상을 말갛게 씻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런 엄마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만으로 내게도 평온이 찾아들었다.

공경희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