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은 대부분 문과 이과는 물론이고 의대 예체능계까지 거의 모든 학과를 문어발처럼 거느리고 있다. 한국의 대학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큰 원인이다. 1990년대만 해도 대학은 규모를 키워야 발전할 수 있다는 확장 논리가 지배했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고교 졸업생들이 입학 정원을 크게 웃돌아 대학의 몸집 불리기는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여러 학과들을 빠뜨리지 않고 갖추다 보면 세계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단 생긴 학과들은 다른 학과와 벽을 쌓아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속성을 보인다. 대학의 역량 강화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낮은 출산율이 계속되면서 대학들은 생존 차원에서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몰리고 있으나 잡화점식 운영은 변하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규모가 큰 국내 사립대학 38개를 대상으로 학과 수를 집계한 결과 대학당 평균 61.3개로 미국 영국의 명문 사립대보다 10개 이상 많았다.
대학 당국도 구조조정에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척이 되지 않는 것은 모든 학과들이 제각각 “꼭 필요한 전공”이라며 통폐합에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독어독문학과의 경우 독일 대학의 전체 독문학과 수보다도 많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중앙대는 2005년부터 구조조정을 선언하면서 77개 학과를 40개로 줄이는 계획을 세웠으나 교내 반대로 난항을 겪다가 현재 47개를 유지하고 있다. 예술계 대학의 경우 연간 3만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지만 국내 여건을 감안할 때 ‘공급 과잉’으로 실업자를 양산하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