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특허경영’ 발목잡는 제도
2006년 다른 경쟁업체도 같은 소송으로 박 대표를 공격했다. 그는 이들과의 소송에서 모두 이겼고 2009년 또 다른 업체를 상대로 특허침해 손해배상소송을 벌였다. 2012년 이 업체가 박 대표에게 1억1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특허 분쟁을 벌인 지 8년 만에 받은 첫 손해배상금이었다. 변호사 비용으로만 수억 원을 들인 박 대표는 “이겨도 손해였다”며 “그동안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까지 감안하면 손해는 더 크다”고 했다.
○ 낮은 손해배상액, 이겨도 손해
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졌던 특허가 이제는 핵심 경영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은 특허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다른 회사와 특허 협력을 진행하는 등 특허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들은 “특허에 투자해도 별 쓸모가 없다”며 특허 경영을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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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만드는 중소기업 A사는 2010년 자사 특허 2건을 침해한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올해 초 승소했다. 법원이 결정한 손해배상액은 2000만 원. 3년 동안 쓴 변호사 비용의 20%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소송비용도 못 건진 셈이다.
2009년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허분쟁을 겪은 국내 기업 가운데 33.2%가 “분쟁에서 이기고도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조용식 법무법인 다래 변호사는 “특허침해를 당한 중소기업 가운데 소용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소송을 포기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특허권자에 불리한 제도
전문가들은 특허침해 사실을 입증하고 손해배상액을 따지는 절차도 특허권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특허권자가 상대 기업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는지, 부당하게 거둔 이익은 얼마인지 정확히 알려면 상대 기업의 자료가 필요한데, 법원에서 상대 기업에 자료 제출을 명령해도 거부하면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특허침해 소송에서 특허권자가 승소하는 비율은 25%로 미국(5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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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필 KAIST 지식재산대학원 교수는 “손해배상액을 현실화하는 등 기업이 특허에 투자한 만큼 이득을 누릴 수 있도록 특허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