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품격/김풍기 지음/316쪽·1만5000원·창비
양반 계층의 전유물로 알고 있는 한시에 개성과 멋을 더한 중인과 서얼의 기여를 밝혀낸 부분도 흥미롭다. 이들은 한시를 성리학적 수양의 결과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으로 본 양반층의 미학에 맞서 본연의 순수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독자적 미학을 창출했다. 또 양반사회의 변두리에서 느끼는 불우함과 울분을 승화해 마음속 성정을 솔직히 드러낸 궁노 출신의 최기남(1586∼미상), 역관 출신의 홍세태(1653∼1725) 같은 시인과 만나게 되는 기쁨도 쏠쏠하다.
유명 문인들의 이름이 거론된 표절에 대해 다룬 장도 흥미롭다. 남의 시의 치장만 조금 바꿔 아름답게 구미는 ‘장점(粧點)’, 표절 의혹을 피하려고 지능적으로 남의 시에서 글자만 몇 개 바꾼 ‘도습(蹈襲)’, 부와 권력을 이용해 아예 대신 시를 지어주는 그림자 작가를 뒀던 ‘대작(代作)’이 당시에도 만연했다. 창작과 표절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지식인의 창작 윤리에 관한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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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시 창작론만큼이나 비평론에도 지면의 상당량을 할애했다. 좋은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좋은 시를 알아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뜻일 테다. 특히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시를 맛에 비유하는 문학론의 얼개를 만들었다는 평가는 새롭다. 허균처럼 이 책의 재미를 맛으로 표현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첫맛은 담백하고 뒷맛은 깔끔하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