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풍경’
박남준(1957∼)
겨울 햇볕 좋은 날 놀러가고
사람들 찾아오고
겨우 해가 드는가
밀린 빨래를 한다 금세 날이 꾸무럭거린다
내미는 해 노루꽁지만하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나갔다지만
빨랫줄에 널기가 무섭게
버쩍버썩 뼈를 곧추세운다
세상에 뼈 없는 것들 어디 있으랴
얼었다 녹았다 겨울빨래 말라간다
삶도 때론 그러하리
언젠가는 저 겨울빨래처럼 뼈를 세우기도
풀리어 날리며 언 몸의 세상을 감싸주는
따뜻한 품안이 되기도 하리라
처마끝 양철지붕 골마다 고드름이 반짝인다
지난 늦가을 잘 여물고 그중 실하게 생긴
늙은 호박들 이집 저집 드리고 나머지
자투리들 슬슬 유통기한을 알린다
여기저기 짓물러간다
내 몸의 유통기한을 생각한다 호박을 자른다
보글보글 호박죽이 익어간다
늙은 사내 혼자 앉아 산골에서 호박죽 끓인다
문밖은 여전히 또 눈보라
처마 끝 풍경소리 나 여기 바람부는 문밖 매달려 있다고
징징거린다
겨울나무를 촬영한 이명호 씨의 사진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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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을 불러온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성공에는 주제가 ‘렛 잇 고(let it go)’도 한몫했다. 주인공 엘사 공주는 자신의 비밀과 약점을 더는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으로 이 곡을 부른다. 생의 고비를 만날 때면 순리를 따르라는 비틀스의 명곡 ‘렛 잇 비’처럼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노래다. 이 계절의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은 2월, ‘세상에 뼈 없는 것들 어디 있으랴’는 시 구절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자투리만 남은 겨울과도 작별해야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