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치부 차장
진심이 아니었다. 인도는 정말 꽝이었다. 인도가 ‘성자(聖者)의 나라’인 것은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한 거리를 묵묵히 참아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덤으로 온몸을 뒤덮는 쾌쾌한 스모그까지. ‘인도에 왜 인도(人道)가 없느냐’는 말은 기자단의 단골 말장난이었다. 더욱이 거리마다 뒤엉킨 차량과 오토바이에서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경적은 스모그보다 참기 힘들었다.
인도를 떠나 스위스로 이동하자 새 세상이 열렸다. 기사를 마감하고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 수도 베른 시내를 둘러보는데, 세상에나 자동차가 멈춰 섰다. 내가 무사히 지날 때까지 그들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게다가 손까지 흔들었다. 오 마이 갓! 이곳은 천국이다.(이건 순전히 관광객의 평가다. 스위스 교민들은 스위스가 이방인에게 상당히 배타적인 나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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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누구 하나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의전에 목숨 거는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르크할터 대통령이 착해서일까? 아마도 스위스 대통령의 위상 때문일 것이다. 스위스 대통령은 4년 임기의 연방 각료 7명이 입각 순서에 따라 돌아가며 1년씩 맡는다. 대통령에게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의사 결정에 있어 7분의 1이다. 권력이 한곳에 집중돼 있지 않으니 충성경쟁을 할 필요도, 심기경호에 나설 이유도 없다.
박 대통령은 개헌 논의의 싹을 잘랐다. 경제가 먼저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어쩌랴.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 게 정치인 것을. 외치와 내치를 나누든, 국회 권력을 강화하든 한 사람에게 쏠린 권력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이것이 매번 되풀이되는 정부 실패의 역사를 끊어낼 유일한 방법이다.
박 대통령은 온갖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시스템의 변화를 원한다. 경제가 순항하려면 근본적으로 권력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공공의 적’이 돼버린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대신해 유감을 표명한 대통령을 보며 안쓰러워서 하는 말이다. 권력이 편해야 국민이 편안하다.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