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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故 황금자 할머니를 모욕한 NHK 회장의 망언

입력 | 2014-01-28 03:00:00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하얀 털모자에 빨간 목도리를 둘렀다. 무릎을 덮은 담요 아래 맨발엔 딸기 무늬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그제 하늘나라로 간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도 13세 때 일본군에 끌려가기 전에는 이 소녀상처럼 풋풋한 소녀였을 것이다.

황 할머니는 간도에서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 귀국했지만 대인(對人)기피증으로 가족도 친구도 없이 살았다. 교복 입은 남학생을 일본군으로 착각할 정도로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폐품 수집으로 어렵게 살면서 정부가 매달 주는 150만 원 정도의 지원금도 거의 쓰지 않았다. 고인은 그렇게 모은 1억 원을 생전에 장학금으로 내놨다. 임대아파트 임차보증금 등 남은 돈도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써 달라고 기부한 ‘마음의 부자(富者)’였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 두 눈을 감지 못했다. 일본군에 짓밟힌 젊음이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죽음의 순간까지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는 없었다. 황 할머니 같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모미이 가쓰토 일본 NHK 신임 회장은 25일 “전쟁을 했던 어떤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다”고 망언을 했다. 그는 “독일 프랑스엔 없었나. 네덜란드엔 왜 지금도 매춘 거리가 있겠느냐”며 “한국이 일본만 강제 연행한 것처럼 말하니 이야기가 까다로워졌다”고 기자회견에서 떠들었다. 일본 공영방송의 수장(首長)이 했다고 믿기 어려운 궤변이다.

그는 위안부 모집에 강압적인 방법이 동원됐고 군이 위안소 운영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는 1993년 고노 담화를 무시한 채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했다. 반(反)인륜적인 전쟁 범죄를 부인한 것이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과 코드가 같은 발언이다. 아베의 낙하산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 NHK를 ‘아베의 나팔수’로 만든 격이다.

모미이 회장은 일본 정치권에서 해임론이 나오는 등 파문이 커지자 “개인적인 의견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때 “회장이라는 직분을 잠시 접어 놓겠다”고 말한 자체가 NHK 회장으로서 적절한 발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게 NHK를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