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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임우선]친정효과와 여성인력

입력 | 2014-01-16 03:00:00


임우선 산업부 기자

“우리 이렇게 몇 년 애 키우다가 다시 취직해서 일할 수 있을까?”

“글쎄…. 구한다 해도 마트에서 바코드 찍는 일 정도가 아닐까.”

얼마 전 대학 시절 친구 5명과 신년 모임을 가졌다. 이젠 30대 중반에 가까워져 모두 ‘아줌마’가 된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 우리는 지난 1년 새 큰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린 분명 5명 모두 ‘직장인’이었는데, 올 들어 보니 나를 포함해 2명만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을 그만둔 3명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둘째 출산’이다. 한 친구는 필자처럼 기자생활을 하던 친구였는데 둘째를 낳고는 도저히 일과 자녀양육을 병행할 수 없어 일을 그만뒀다. 다른 한 친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철밥통 공기업’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뒀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신청했더니 부서장이 따로 불러 대놓고 그러더라고. ‘자꾸 쉬는 당신 때문에 동료들이 힘드니 차라리 일을 그만두라’고.”

마지막 친구는 국내 굴지의 조선소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직장이 있는 거제도와 친정이 있는 서울 간 거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 친구는 첫째를 낳고 1년 넘게 눈물을 훔치며 주말마다 버스로 서울과 거제를 오갔는데, 둘째까지 낳고선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친구는 “외국에 배 팔러 다닐 때 쓰던 영어를 이제는 유아용품 ‘직구’하는 데만 쓴다”며 “일에 쏟던 열정을 쓸 데가 없으니 괜히 나중에 애만 붙잡고 못살게 할까 두렵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우리도 네가 무섭다.”

애 둘을 낳고도 무리 없이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십중팔구 가까이에 친정엄마가 산다. 이른바 ‘친정 효과’다. 어떠한 경제지표에도 잡히지 않지만 한국의 수많은 여성 인력을 일하게 하는 힘, 반대로 이것이 사라질 경우 상당수의 여성 인력을 시장에서 이탈시킬 수 있는 파괴적 변수, 평소 나는 이걸 ‘친정 효과’라 부른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엄친딸’이었던 친구들이 속속 일을 그만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누구보다 좋은 교육을 받았고 남부럽지 않은 외모와 남자 뺨치는 어학실력까지 갖춘 그들이 30대 중반 즈음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환경에 부닥쳐 결국 집에 들어앉고 만다. 진짜 친정이 아니면 나라도, 회사도, 지역사회도 제대로 된 ‘친정 효과’를 제공해주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문득 북유럽을 누비며 몇백억, 몇천억 원짜리 배를 내다팔던 내 친구가 십 년 뒤 동네 마트에서 바코드만 찍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너무 아깝다.

여성 인력 활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한국 사회엔 그런 여성이 정말 많다. 이런 여성들을 일터로 흡수하는 길이 곧 한국 경제가 살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 혹시 아는가. 엄마들 간 사교육 경쟁도 조금은 줄어들지.

임우선 산업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