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노예해방령은 당초 일부 지역에 한정됐지만 연방의 승리가 명확해지면서, 미국의 모든 지역으로 확대 됐습니다. 링컨이 위대한 까닭은 단순히 보편적 평등에 대한 헌신 때문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실속에서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인류의 이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DB
○와 ×로 묻는다면, 모두들 ①은 ×, ②는 ○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링컨의 노예해방령은 미국 연방에 대해 반란 상태에 있는 모든 주 혹은 주 일부 지역의 모든 노예들을 자유인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노예해방령을 꼼꼼히 읽어 보면, 노예해방은 미국의 모든 지역이 아니라 ‘반란 상태에 있는’ 지역에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반란 상태에 있는 지역은 미국 연방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노예해방령은 그 지역에서 집행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링컨의 노예해방령은 반란 상태의 지역에 있는 노예를 단 한 명도 해방시키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링컨의 노예해방은 1863년 1월 1일 당시 반란 상태에 있는 지역의 노예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예해방령의 내용과 달리, 노예해방은 반란 상태에 있었으나 연방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링컨이 노예를 해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노예해방령이 발표된 이후, 연방군은 반란 지역을 수복하고 점령지역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이에 따라 노예해방령의 효력으로 노예해방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①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②의 주장이 역사적으로 맞는 것도 아닙니다. 링컨의 노예해방령으로 반란을 일으킨 지역의 노예들이 해방되었지만, 남부 연합에 가담하지 않고 연방의 편에서 싸웠던 지역, 즉 미주리 주, 켄터키 주 등의 일부 남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노예 소유가 합법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당시 약 400만 명의 노예 가운데 약 310만 명만 노예해방령의 대상이었고, 나머지 90만 명의 노예들은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링컨이 노예해방령에 서명을 할 때 그 옆에서 서명 과정을 지켜보던 대통령 비서는 링컨의 손이 떨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왜 떨었을까요? 노예를 해방시키기 싫어서? 아니면, 노예해방을 하게 되어서 미국사와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라는 가슴 벅찬 희망 때문에 그랬을까요? 사실 노예해방령에 서명한 링컨의 동기 또한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남부 주들이 연방으로부터 탈퇴하고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을 때,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주장하는 북부의 급진적인 정치인들은 링컨에게 당장 노예해방을 선언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부에서는 노예제도를 수호하기 위해 연방을 탈퇴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한 신문사의 편집인이었던 호러스 그릴리가 링컨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노예해방을 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최고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는 것이며 노예제의 유지나 파괴에 있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연방을 수호할 수만 있다면 모든 노예를 해방할 수도 있고, 일부의 노예들을 해방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노예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링컨에게는 인간의 보편적 평등보다는 연방의 수호라는 현실적인 정치적 목적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만약 미국 내전이 발발하자마자 링컨이 노예해방을 전쟁 목적으로 내세웠다면, 연방을 지지했던 남부 지역이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연방의 승리는 노예제를 거부하는 북부 지역뿐 아니라 노예제를 인정하지만 연방에 잔류했던 일부 남부 지역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노예제도에 대한 링컨의 원리원칙적인 입장이 아니라 그의 모호한 입장이 바로 이러한 협력을 가능케 했습니다.
연방의 승리가 명확해지면서, 링컨은 미국의 모든 지역에서 노예해방을 추진하는 헌법수정에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1865년 1월에 노예제도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헌법수정조항 제13조가 통과되었습니다. 링컨이 위대한 까닭은 단순히 보편적 평등에 대한 헌신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 속에서 때로 모호하게 타협하고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인류의 이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역사의 흐름을 깊이 읽을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