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이 소장한 19세기 조선의 갑옷과 투구, 인광노(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고종의 정치 외교 고문이던 묄렌도르프가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보면 이 박물관은 조선 19세기 갑주(甲胄·갑옷과 투구 일체)를 12점이나 갖고 있다. 당대의 갑주는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30여 점 정도만 파악될 정도로 희귀한 유물이다.
박물관은 조선의 당시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국의 민속유물을 3000여 점도 소장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이 민속박물관이 어떻게 이만한 유물을 소장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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묄렌도르프가 1883∼1884년 박물관과 교환한 서신들을 보면, 모두 15개 항목으로 나눠진 목록표가 등장한다. 항목에는 무기류나 필기구는 물론이고 주거용품 화장용품 주방기구 심지어 아이들 장난감도 올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임소연 학예연구사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시장 좌판을 싹 쓸어가거나 아예 공방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유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갑주 일체를 내의와 투구싸개, 보관함까지 ‘풀세트’로 갖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그 덕분에 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유물 가운데는 현재 국내에선 찾을 길 없는 독특한 유물도 하나 있다. 19세기 서민이 발화도구로 썼던 인광노(引光奴)다. 기다랗고 얇게 자른 나무 끝에 백색 유황을 바른 성냥의 일종이다. 이익(1681∼1763)이 집필한 성호사설에는 “밤에 급하게 등불을 켤 때 즉시 불꽃이 일어나게 했다”며 인광노를 설명한 대목도 나온다. 일제강점기 공장제 성냥이 들어오며 자취를 감췄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1950년대 북한 유물도 1000점가량 된다. 과거 동독이었을 때 북한 정부가 교류 차원에서 보내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공산품이라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당시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사료들이다. 박물관의 디트마 그룬트만 동아시아 유물담당 큐레이터는 “다양한 한국 유물을 소장해왔으나 그간 기초 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며 “문화재연구소와의 교류를 통해 의미 있는 학술연구가 이뤄진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