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문화부 기자
그러다보니 몸에 익은 것은, 뭐든 내가 잘못했을 때 또는 남의 잘못을 목격했을 때 수더분하게 넘기지 못하는 습관이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배어 있고 “지적 좀 그만하라”는 얘기를 수없이 듣는다. 틀린 조언이 아님은 알고 있다. 사과나 지적은 대개 불편하고 불필요하다.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대중음악 히트 곡을 적절히 삽입해 감흥을 높였다. 귓바퀴 한구석에 묻혀 있던 추억을 되살려낸 숱한 옛 스타들 중 슬쩍 지워진 목소리가 하나 있다. 틀림없는 슈퍼스타였던, 유승준이다.
1일 한 인터넷 매체가 “이달 중 유 씨의 입국금지 조치가 해제된다”고 보도하자 분기탱천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병무청이 사실무근임을 밝혀 난데없는 논란은 그럭저럭 가라앉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도록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까닭은 뭘까. 병역을 지지 않은 ‘검은머리 외국인’ 연예인은 헤아리기 구차할 만큼 허다하다. 유 씨에 대한 대중의 유난스러운 반감은 그만큼 당시 그의 인기가 유달랐음을 확인하게 만드는 방증이다.
한 ‘외국인’이 합법적 입국을 요청하는 것일 뿐이므로 감정적 판단을 떠나 일단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꽤 힘이 실리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12년 동안 이번 정초를 포함해 몇 차례 보인 유 씨의 태도는 상황을 변화시키기에 많이 부족했다.
얼마 전 잠든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생각했다. “잘못을 지으면 벌을 받는다”가 아니라 “잘못을 저질렀어도 어떻게든 아무 잘못 하지 않은 듯한 얼굴로 버틸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어야 하지 않느냐고.
유 씨가 진정 소명을 원한다면, 긴 세월 자신이 겪은 심적 고통에 앞서 12년 전 팬들이 떠안은 배신감의 무게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물쩍 천국’의 세상살이 노하우 사례를 하나 더하게 될 뿐이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