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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스케치]장기 기증하고 떠난 최요삼,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

입력 | 2014-01-04 03:00:00

비운의 챔피언, 80만명 갈채속에 ‘생명나눔 링’ 오르다




1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 시에서 열린 로즈퍼레이드에서 장기 기증인들을 기리는 꽃차가 지나가자 관중들이 환호하고 있다. 등 모양의 장식물에는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81명의 초상화가 걸렸다. 자주색 원통형 등의 한가운데에 고 최요삼 선수의 얼굴이 보인다. 패서디나=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1일 오전 8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 시 콜로라도 대로. 영상 16도의 따스한 햇살 아래 장미로 가득 찬 꽃차 행렬이 시작됐다. 꽃차들 사이로 악단과 기마부대가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중 80만 명의 환호를 받으며 행진했다. 8.8km에 걸친 퍼레이드 구간은 트럼펫과 드럼 소리, 새해를 맞이하는 관중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매년 새해 첫날 패서디나에서 열리는 ‘로즈 퍼레이드’였다. 미식축구 대회 로즈볼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한 이 행사는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7500만 명이 TV로 시청했다. 미국에서도 가장 큰 새해 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등 모양의 5개 장식물을 단 꽃차 한 대가 멀리서 다가오자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에는 장기와 피부조직, 각막 등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81명의 얼굴이 꽃으로 수놓여 걸려 있었다.

자주색 밀짚꽃으로 장식된 등불의 한 가운데. 2007년 12월 25일 링 위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권투선수 고 최요삼 씨의 초상화가 보였다. 글러브를 끼고 활약하던 당시 눈빛이 살아 있는 모습이었다.

행렬을 지켜보던 엄마 오순이 씨(70)는 박수를 치던 손을 내리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천천히 흔들었다. 아들이 이 세상을 떠난 뒤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운의 세계 챔피언이 남긴 사랑


“내일 경기 나가니까 아침에 소화 잘되는 된장찌개나 시원하게 끓여줘.”

2007년 12월 24일 저녁.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아들은 체중 조절 때문에 마음껏 먹지도 못했다. 1g이라도 줄이기 위해 틈날 때마다 침을 뱉어댔다.

34세.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아들은 다시 글러브 끈을 바짝 조였다.

“요삼아, 이제 권투 그만하면 안 되겠니….”

아들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약속했지만 엄마는 붙잡고 싶었다. 그날따라 가슴이 허전하고 쓸쓸해 견딜 수 없었다.

다음 날 최요삼은 경기 종료 10초를 남겨두고 상대 선수의 오른 주먹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형이 못 일어나면 장기 기증을 하는 게 어떨까. 엄마가 못한다면 절대 안 해요.”

아들이 입원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막내 경호가 엄마 손을 꼭 붙들고 물었다. 막내는 평소 ‘남을 돕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형의 뜻을 기리고 싶었다.

“경호야,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어….”

면회 시간마다 아들을 찾는 발걸음은 끊이질 않았다. ‘나한테만 귀한 줄 알았던 내 아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1994년 프로 데뷔 이후 1999년 세계챔피언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엄마는 장기 기증이 여러 사람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라고 믿었다.

2008년 1월 3일 0시 1분. 아들은 의학적 사망 선고를 받고 엄마 곁을 떠났다. 뇌사로 쓰러진 지 9일 만이었다. 4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폐, 간, 심장, 신장, 췌장, 각막 등이 말기 환자 6명에게 기증됐다. 아들은 누군가의 눈이 되고 심장이 되고 숨결이 되어 사라졌다.

아들의 초상화를 꾸민 엄마가 그 뒷면에 ‘사랑한다 아들. 오순이’라고 쓰고 있다.

‘혹시 우리 요삼이가 아닐까.’

아들이 떠난 지 1년째 되던 어느 봄날, 공원에서 아들과 똑 닮은 사람이 뛰어갔다. 운동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들이었다. 아들이 세상에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엄마는 그 뒤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아들과 비슷한 또래를 보면 여전히 발걸음을 멈춘다. ‘혹시 우리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게 아닐까’ 하고.

최요삼은 6남매 중 엄마를 가장 끔찍이 챙긴 아들이었다.

“책상 서랍에 돈 넣어놨으니까 필요할 때마다 써.”

매달 꼬박꼬박 드리는 생활비가 부족할까 봐 아들은 항상 따로 돈을 챙겨 놓곤 했다. 엄마 쓰기 편하게 1만 원짜리 현금을 따로 뽑아 흰 봉투에 한 장 한 장 담아뒀다. 대전료가 없어 경기를 치르지 못할 때도 내색하지 않았던 속 깊은 아들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장기를 기증한 여섯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위안이 될 것 같아서다. 한국은 기증자 유가족과 이식 수혜자 간 만남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내 자식처럼 여기며 지낼 텐데….”

엄마는 언젠가, 우연하게라도 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길 기도해 왔다.


아픈 기억을 보듬어준 사랑의 행진

장기 기증 꽃차는 2004년부터 매년 로즈 퍼레이드에 등장해 올해로 11번째를 맞았다. 미국 최대 장기구득기관 원 레거시(One legacy)가 장기 기증을 독려하고 기증자들을 예우하기 위해 시작한 행사다. 올해 한국에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의 추천으로 최요삼 선수 초상화가 꽃차에 걸렸다.

로즈 퍼레이드를 일주일 앞둔 지난해 12월 26일, 오 씨는 생전 처음 미국땅을 밟았다. 오 씨는 로즈볼 경기장 인근의 한 창고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꽃차를 장식할 재료를 점검하면서 장기 기증자 가족들을 만났다.

꽃차 장식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는 살아 있는 식물. 해초, 씨앗, 나무 껍질, 말린 꽃 등은 물론이고 금귤 가루로 오렌지색을, 밀짚꽃으로는 붉은색을 냈다. ‘영원의 꽃’이라 불리는 장식은 햇빛이 비치면 더 밝은 금빛을 냈다.

오 씨는 꽃차에 걸릴 아들 초상화에 마지막 손길을 더했다. 조심스럽게 붓을 들어 초상화 테두리에 하얀 풀을 바르고 그 위에 흑갈색 양귀비 꽃씨를 덧뿌렸다. 꽃씨를 한 알 한 알 덧바를 때마다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더해갔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았다.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부모가 돼서 이게 잘하는 짓일까.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건 아닐까.’

장기 기증 동의서에 보호자 서명을 하던 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결심을 굳혔지만 마음은 흔들렸다. 무슨 정신으로 펜을 잡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생각해서 좋은 쪽으로 하는 게 백 번 옳다’고 믿었다. 오 씨는 언젠가 TV에서 아들의 각막을 이식받았다는 두 살배기 아기를 우연히 본 적 있다. 아기 엄마가 손바닥을 짝짝 치자 아기는 엄마를 향해 열심히 기어갔다.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어린 것이 내 아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구나.’

눈뿐만 아니라 아들의 심장도 살아서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뛰고 있다. ‘아들은 떠났지만 영원히 간 것은 아니었다’고 위안을 삼았다.

오 씨는 로즈 퍼레이드 행사에서 비슷한 처지의 장기 기증자 가족들을 만난 뒤 그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꽃차 장식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트리나 그로스 씨(46)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로스 씨의 아들 앤드루는 6년 전 세상을 떴다. 당시 아들의 나이 8세. 심장과 각막을 기증해 두 명을 살려냈다. 오 씨는 ‘우리 아들보다 17년이나 못 살고 떠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로스 씨는 “우리 아들들의 아름다운 희생은 우리의 축복이자 특권입니다”라며 오 씨를 위로했다. 그 순간 오 씨는 그로스 씨를 꼭 껴안았다.

“말은 서로 안 통해도 자식 먼저 보낸 사람들 맘은 다 똑같아. 힘내요.”

초상화 속 기증인 81명은 태어난 지 15시간이 되지 않아 숨진 신생아부터 20대 학생, 70대 노인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기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오 씨도 금세 마음의 문을 열었다. 기증자 유가족들과 만날 때마다 오 씨는 먼저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만 겪는 슬픔이 아니구나….”

오 씨는 위로받기보다 어느새 이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기증자를 예우하면 축복이 더해진다

로즈볼 경기장 인근 꽃차 작업 창고에서 엄마 오순이 씨가 꽃으로 수놓은 아들 고 최요삼 선수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오 씨는 장기를 기증한 아들이 많은 이들에게 축복받을 수 있어 기뻤다. 한국에선 자부심을 느끼기 힘들었다. 기증자들에 대한 예우 문화가 그만큼 척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상금 문제는 기증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에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가 다양한 형태의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다. 기증자 유가족은 장제비, 치료비, 위로금을 각각 18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또 이식받은 환자 가족들로부터 200만 원까지 추가로 받을 수 있어 최대 740만 원까지 수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유가족은 ‘돈 때문에 가족을 팔았다’는 비난 섞인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오 씨는 “어떤 부모가 자식의 장기를 기증해 돈을 받으려 하겠느냐”며 “세간의 오해가 또 한 번 유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고 말했다.

원 레거시의 최고경영자인 톰 모네 대표(60)는 “금전적 보상보다는 기증자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예우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미국장기이식관리센터(UNOS)와 원 레거시 등 장기구득기관에서 유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증자 이름을 딴 지역 체육대회를 열거나 각종 모임 등을 가진다. 로즈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장기 기증 꽃차 행렬은 그중 가장 큰 행사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최로 뇌사장기기증인 가족 예우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모네 대표는 “장기 기증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미국에서는 장기 기증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준비된 꽃차에는 30명이 탑승했다. 장기를 기증받아 새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관중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신장을 기증한 살아 있는 기증자 12명도 꽃차 양옆에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꽃차 장식에 쓰인 장미꽃 1100송이에는 기증자와 수혜자,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최요삼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갔다.

올해 장기 기증 꽃차의 주제는 ‘세상을 밝히다’였다. 새해 첫날을 낯선 이국땅에서 보낸 오 씨는 꽃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아들이 생전에 지녔던 꿈과 용기, 열정을 담아 생명의 등불을 환히 비췄다.

‘사랑한다! 아들….’

두 손을 꼭 모은 엄마의 마음속에 아들의 모습이 더욱 선명히 새겨졌다.

패서디나=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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