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대 국제부장
충격은 컸다. 아니,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배운 건 뭐람! 초중고 시절 배운 것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 반공웅변대회에 나갔던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특히 뒤늦게 알게 된 광주학살의 진실과 겹치면서 당시 정권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그 시절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운동권’에 빠져든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학 때 가졌던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평등에 대한 강한 집착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가 개혁개방을 선택하고 동유럽이 사회주의권에서 일탈한 지도 꽤 지난 1993년경이었다. 개혁개방 2주년을 맞아 찾은 러시아는 ‘선진 사회주의 종주국’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노동자의 월급이 50달러 안팎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시장은 우리의 1960년대 재래시장을 방불케 했다. 한 60대 할머니는 포도주 한 병을 달랑 들고 길가에서 하염없이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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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권이 무너진 지 20년이 넘었지만 ‘우리식 사회주의’라고 우기며 철권 왕조체제를 이어가는 북한에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않다. 이른바 ‘종북(從北)좌익세력’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갈수록 격화하는 남쪽의 사회 모순일 것 같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빈부격차, 고착화하는 신분구조, 국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늘어도 내 수입은 늘지 않는 분배 시스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온 국민의 비전이었던 ‘잘살아보세’가 이제는 ‘(격차를) 잘 늘려보세’로 바뀌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다.
또 다른 주요 원인의 하나는 ‘북한 바로 알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에 대한 개방을 고려해보면 어떨까. 전국으로 송출되는 북한의 유일한 방송인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을 필두로 한 ‘백두혈통’ 선전이 방영물의 25%에 이른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땡전 뉴스’는 저리 가라다. 나머지 보도(16%) 드라마(10%) 영화(7%) 등도 대부분 체제선전용이다. 돈을 주면서 일부러 보라고 해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다.
노동신문 또한 마찬가지다. 전체 6개 면 가운데 제1면은 무조건 통치자 동정 및 찬양이다. 2, 3면 역시 대부분 우상화 교육용 보도다. 4면만이 일반 주민이 관심을 가질 행정 경제 기사다. 5면은 남한 뉴스, 6면은 국제 뉴스다. 하루 이틀 치만 펼쳐 봐도 과연 동경할 나라인지, 좇아야 할 체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일각에선 이를 차단해야만 종북 세력을 줄일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국민의 수준을 믿어도 될 듯하다. 우리의 북한 미디어 개방은 북한 정권에 남쪽 미디어 개방을 압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북의 진실을 제대로 알게 하면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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