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이 이 학교 출신”… “어머니가 근처에 살아” 지방선거 겨냥 출마예정자 북적… 축사 순서 싸고 실랑이 벌이기도
“저는 비록 A고교 출신은 아니지만 제 어머니가 A고교 근처에 사셨어요.”
“제가 나온 고교와 A고교는 예부터 친근한 관계였어요.”
17일 오후 대전 서구의 한 컨벤션센터. 150여 명의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A고교 정기총회 및 송년회가 시작됐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에는 ‘낯선 손님’ 5, 6명이 무대 앞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16일 서구 만년동에서 열린 한 단체의 송년의 밤 행사에도 10여 명의 후보군이 참석했다. 행사 주최 측 관계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불청객이 너무 많아 축사를 모두 생략하자 만찬시간에 테이블을 돌며 명함을 돌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후보군들에게 연말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은 그야말로 ‘대목’이다.
많은 이를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자리다. 게다가 축사 기회까지 주어지면 금상첨화다. 출마 의사를 밝히는 것은 선거법 위반. 따라서 이를 지키면서도 짧은 인사말에 자신의 인상을 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 출신이다. 저는 ○○고교(중학교)를 좋아한다. 친한 친구가 여기에 있다’는 등의 연고(緣故)를 내세워야 한다.
17일 행사장에서 만난 한 구청장 출마 예정자는 “연말에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오늘도 벌써 여섯 번째”라고 했다. 그는 “현직 구청장들이 ‘현장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여건이 훨씬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종종 말썽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달 중순경 서구 둔산동에서 열린 한 단체의 송년회에서는 출마자들끼리 축사 순서를 놓고 실랑이를 벌여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도 보였다. 또 다른 고교동문 송년회에서는 동문회장이 특정 후보군에게만 축사를 하도록 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충남의 한 기초의회 집행부 의원은 1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 달여간 행정감사 및 예산심의를 하고 있지만 정작 행정감사는 외면하고 내년 선거를 위해 동네 행사만 찾아다니는 의원이 많다.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며 동료 의원을 꼬집었다. 그는 “이 같은 부실 예산심의 때문에 예산 5223억 원 중 단 1000만 원만 삭감됐다”고 덧붙였다.
최근 강원 춘천시에서 열린 한 소규모 행사에서는 이광준 시장과 전주수 부시장이 나란히 참석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전 부시장은 춘천시장에 출마를 선언한 상태. 두 사람은 지난달 관내에서 열린 노인 게이트볼 대회에도 나란히 참석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행사 참석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춘천=이인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