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 출신 디자이너로 첫 임원 된 에버랜드 이은미씨
1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무실에서 만난 이은미 상무. 대기업 공채 출신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임원에 오른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이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삼성에버랜드 제공
11일 사무실에서 만난 이 상무는 “디자이너 후배들에게 희망을 준 것 같다. 나를 ‘롤 모델’로 삼겠다는 말을 듣고 정말 뿌듯했다”고 했다.
숙명여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이 상무는 1991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제일모직(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갤럭시 브랜드 디자인을 담당한 이후 23년간 줄곧 남성복을 맡아 왔다. 갤럭시에 이어 로가디스 등의 디자인실장을 연이어 지냈고 올해 5월에는 남성복 디자인 전체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 상무는 삼성그룹 사장단의 코디네이터 역할도 맡았다. 그는 “2000년부터 몇 차례 사장단을 상대로 스타일 강의를 했는데 어떤 사장은 제안에 따라 바로 멋쟁이가 됐지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분도 있더라”고 귀띔했다.
이 상무는 임원 승진의 이유로 항상 꿈을 크게 갖고 즐겁게 일한 것을 꼽았다. 그는 “입사 때부터 30대 중반에 브랜드 실장이 되는 것을 꿈꿨고, 실장이 된 뒤엔 이 조직에서 ‘별’을 달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31세에 실장이 됐고 2009년 CD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며 디자이너들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내겐 기분 좋은 스트레스였다”며 “국내 남성복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자부심도 나를 더 달릴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주위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 못 올랐을 것”이라며 “이번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입사 후 9년 만에 5세 된 딸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고심 끝에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담당 임원이 당시엔 전례가 없던 육아휴직을 준 덕에 가정을 추스른 뒤 3개월 만에 돌아왔다.
디자인실장 자리를 비우고 유학을 간 것도 이례적이었다. 임원들에게 전화와 e메일 공세를 벌여 1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이 상무는 “잦은 출장 및 야근으로 육아와 가사에 제대로 신경을 못 썼는데 항상 응원해준 남편과 친정 시댁 식구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이해해준 딸이 한없이 고맙다”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