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걀 배달하는 농부/김계수 지음/288쪽·1만3800원/나무를 심는 사람들
닭이 놀랄까 봐 달걀을 수거하러 산란장 문을 열기 전 노크를 하고, 제초제를 쓰지 않으려고 해충을 일일이 손으로 잡는 이 원칙주의자 농부가 세상을 보는 통찰력은 책 곳곳에서 빛난다. 아둔한 이들을 ‘닭대가리’라고 부르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저자는 꾀를 부리지 않고도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며, 인간에게 유익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모자라 똥오줌으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닭만 한 미덕을 갖춘 사람이 어디 흔하냐고 되묻는다. 먹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몰려다니는 병아리의 모습에서는 어설픈 지식과 권력을 남들에게 못 드러내 안달하는 미숙한 인간의 모습을 읽어 낸다.
이제 그리 새로울 것 없는 귀농인의 친환경 영농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친환경 농업의 이상과 현실, 원칙과 각론 사이에서 갈등하는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싶다. 닭에게 생태친화적 사육 환경을 만들어 줘도 유전자 조작 농산물로 만든 수입 사료를 먹여야 하는 현실에서 오는 자괴감, 농장 유지하려고 연간 수천 L의 기름을 때고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는 현실과 가축이 내뿜는 온실가스를 떠올리며 느끼는 자책감이 그렇다. 한 술 더 떠 “(내 영농 방식은) 자연에 무해한 방식이 아니라 조금 덜 해로운 방식”이라고 토로하는 저자에게 당장이라도 달걀을 주문하고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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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