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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형의 기웃기웃]동시대 예술가

입력 | 2013-12-07 03:00:00


친구가 말했다. “그 작가, 이번 책은 너무 별로더라.” 그랬을 수 있다. 별로였을 수 있다. 그리고 친구 앞에서 자신의 솔직한 감상평을 얘기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는가. 내가 그 작가도 아니고…. 그런데 “현대 소설 못 보겠어. 난 다시 고전으로 돌아갔어. 요즘 톨스토이를 보고 있는데….” 친구의 이 말에 나는 그만, 말도 안 되게 욱하고 말았다. “야,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랑 ‘안나 카레니나’만 쓴 줄 아니?”

고전, 물론 나도 좋아한다. 고전, 말 그대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과거의 작가들은 현 시점에서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보다 더) 영광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평생 동안 쓴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의 대표작만 접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을 수 있고, 그의 작품세계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있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살아생전에는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으나 이제 와 고전으로 기억되는 작가들도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우리가 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면, 그의 신작을 바로바로 읽어보며 가타부타 입을 놀려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 작가, 이번 책은 너무 별로더라. 현대소설 못 보겠어.”

“우리는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아.” 나는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물론 내가 그 작가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나 또한 그의 이번 작품에 조금은 실망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애써 외면하며 실망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데, 친구의 툭 찌름에 괜히 내가 내 발 저려서.

하지만 조금은,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참 별로다. 과거‘만’ 사랑하는 사람들. ‘그때가 좋았지…’, ‘그 시절엔 적어도…’, ‘왕년엔 나도…’, 과거의 영광‘만’을 기억하고, 과거의 작가‘만’을 사랑하고, 젊은 날 혹은 지난날의 나‘만’을 곱씹는 사람들.

내 나이 스무 살, 서른 살을 돌아보면 물론 나도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은 조작되고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라고 힘든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은 이미 지나쳐 왔을 뿐. 지금의 힘듦과 고민 또한 언젠가는 또 지나갈 것처럼. 영원할 것만 같았던 많은 것들이 결국은, 언젠가는, 지나가는 것을 봐 오지 않았는가. 내 맘처럼 완전한 해결은 아닐지 몰라도 결국은, 언젠가는.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번엔 조금 실망스러운 작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그는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기에, 나는 그의 작품 베스트, 그의 좋은 점만을 보고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신 그가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해 내고, 그가 또 어떻게 멋진 변신을 거듭해 가며 성장해 가는지는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동시대 예술가들을 사랑하는 재미, 그리고 어쩌면 나의 현재, 나의 지금 흐르는 삶을 바라보는 재미일지도 모르니까.

―강세형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