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운전면허시험장 부근에서 운전면허 문제집을 판매하고 있는 간이 판매소. 경찰의 단속에도 아랑곳없이 성행하고 있는 불법운전학원들과 운전면허시험제도의 지나친 간소화 정책으로 국가의 정식 허가를 받고 운영되는 자동차운전전문학원들이 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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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문 닫는 운전학원들…왜?
운전면허 따기 쉬워지니 불법학원 성행
중국인들 원정 면허 취득 등 문제 심각
전국 400여개 운전학원 극심한 경영난
최근 경찰관 출신으로 수도권 한 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학감 A씨와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학감은 학교로 치면 교장과 비슷한 역할이다. 수강생과 강사 관리, 교육 커리큘럼 등 학원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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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운전전문학원들의 경영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이유는 물론 수강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강생이 줄어들고 있는 데에는 국가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이미 운전면허증을 획득한 사람들이 포화상태에 근접하고 있다는 이유가 크다. 하지만 A학감은 “그것은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 불법학원과 면허시험 간소화 정책이 부른 ‘화’
A학감은 진짜 치명적인 이유는 불법학원의 성행과 운전면허제도의 문제점이라고 했다. 불법학원의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이 단속을 하고 있지만 “운전면허를 싸고 쉽게 따게 해주겠다”는 불법학원 호객꾼(삐끼)들은 경찰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운전면허시험장 주변에 독버섯처럼 펴져 활동하고 있다. 또한 불법학원은 열악한 시설, 여성 수강생 성희롱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불법학원이 성행하는 이유는 검증되지 않은 불법 강사에게 몇 시간만 배워도 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는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제도 탓이 크다. 굳이 운전전문학원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면허를 딸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법인줄 뻔히 알면서도 호객꾼들을 따라 나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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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면허따기가 거저먹기”…이젠 국격의 문제로
최근 동아일보는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중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집중 보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면허를 신규취득한 중국인은 2만3242명이나 된다. 전년에 비해 무려 57%%나 증가한 수치다.
중국인들이 굳이 우리나라까지 와서 운전면허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시험이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79시간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시험을 통과한다고 해도 통상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1년 6월 운전면허시험 간소화 시행 이후 운전전문학원에서 13시간만 의무교육을 받으면 된다. 기능시험은 직진으로 나아갈 줄만 알면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론적으로 1∼2일이면 면허증을 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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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운전면허시험제도는 교통사고 ‘좌시형’ 제도나 마찬가지다. A학감은 “제발 국가에서 전국 5만 운전전문학원 가족의 한숨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토했다.
해외에까지 ‘세계에서 가장 운전면허 따기 쉬운 나라’로 소문난 한국. 일각에서는 이대로라면 앞으로 국제운전면허증을 인정하는 제네바국제협약에서 대한민국 운전면허증의 수준을 문제 삼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운전면허제도는 이제 ‘국격’의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