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계약서엔 수수료율 0.5%… 법적상위 확인서엔 몰래 0.9%
전세 매물이 귀한 임대시장에서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더 받아주겠다”거나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을 테니 매물을 달라”고 하는 중개업소 때문에 세입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 씨는 집을 처음 내놓았던 A중개업소에 사고파는 계약을 모두 맡겼다. 그 대신 중개수수료는 새로 산 7억6000원짜리 아파트에 대해서만 수수료율 0.5%를 적용해 380만 원을 내기로 했다. 거래가 뜸한 요즘 중개업소도 계약 2건을 맡을 수 있으니 선뜻 동의했고 이 내용을 계약서에 써넣었다. 현행법상 6억 원 이상 주택의 매매거래는 중개수수료율 0.9% 내에서 소비자와 중개업소가 협의해 결정하게 돼 있다.
이사를 마치고 중개수수료 380만 원을 내자 중개업자는 갑자기 돈을 더 달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들이밀었다. 김 씨는 계약 당시 중개업자에게 주택 권리관계, 토지이용계획, 입지 조건, 건물시설 상태, 벽면·도배 상태 등이 적힌 서류라는 설명만 대충 듣고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이 확인서 마지막에 중개수수료를 기재하는 항목이 있었고 중개업자가 수수료율 0.9%를 써놓은 것이었다.
부동산 장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집값 하락과 전세금 상승에 시름하는 주택 수요자들을 두 번 울리는 중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오피스텔 투자에 나섰던 김모 씨(53)는 계약 직전에 이를 발견한 사례다. 계약을 앞두고 중개업자가 건넨 중개대상물 확인서에 수수료율 0.9%가 프린트돼 있었다. 김 씨가 항의하자 중개업소는 “자동적으로 서류에 찍혀 나오는 것”이라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실랑이 끝에 김 씨는 애초에 합의했던 수수료율(0.7%)로 바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중개대상물 확인서는 수수료뿐 아니라 집의 현재 상태에 대해 거래 당사자들이 합의해 증거로 남겨 놓는 법적 서류”라며 “나중에 집에 하자가 있을 때도 이를 근거로 중개업자나 매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물이 턱없이 부족한 전세시장에서는 세입자들이 ‘약자’의 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이모 씨(35)는 석 달을 넘게 기다린 끝에 얼마 전 전세로 나온 깨끗한 아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집을 보러 간 날 계약을 하려고 하자 중개업자는 “다른 사람은 중개수수료를 0.9% 주기로 했다”며 딴청을 피웠다. 법적으로 임대차 계약의 수수료율 상한선은 0.8%. 매물을 놓칠까 걱정된 이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하는 중개비를 주고 계약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법적 한도보다 수수료를 더 받으면 영업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받게 돼 요즘 이런 사례는 많이 줄었다”며 “수수료를 과다 청구했다면 영수증 같은 증거를 남겨서 시군구청에 신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