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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면 바뀌는 펀드매니저… 그 펀드 믿고 돈 맡기라고?”

입력 | 2013-11-27 03:00:00

[노후준비, 금융선진화에 달렸다]<중>펀드투자 실패 경험 잊게 하라




한 소형 자산운용사가 내놓은 ‘3만불시대 선도주펀드’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펀드매니저가 6번이나 바뀌었다. 해마다 새로운 펀드매니저가 펀드 운용을 담당한 셈이다. 상당수 자산운용사들의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펀드매니저들이 자주 이직을 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펀드를 맡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펀드매니저의 평균 근속 연수는 4년 10개월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펀드가 철학을 갖고 제대로 운용되기가 힘들다. 자산운용업계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2011년 초 국내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던 직장인 박모 씨(34)는 펀드에 가입할 때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가입 당시 코스피가 2,100을 넘어 투자를 망설였지만 판매 직원은 “적금과 주식에 돈을 나누어 투자하기 때문에 손실이 날 확률이 매우 작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코스피가 1,600까지 떨어지면서 10% 넘게 손실이 났다. 이달 초 원금이 회복되자 박 씨는 바로 펀드를 환매했다. 박 씨는 “판매 직원이 손실이 날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수익률이 높다는 점만 강조했다”며 “다시는 펀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처럼 한창 노후 대비를 해야 할 30대 초중반인 직장인들은 사회 초년생 시절인 2007∼2008년 펀드에 가입했다가 50% 안팎의 손실을 본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은행 예금이나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만으로는 제대로 노후 대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산운용상품 가입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펀드 투자를 했다가 40% 넘는 손실을 본 경험이 있는 회사원 전모 씨(34·여)는 “자산운용상품으로 노후 준비를 했다가 내가 노후자금을 받아야 할 때 금융위기가 터지면 노후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선뜻 가입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펀드 때문에 속이 쓰린 투자자들이 속출한 것은 은행, 증권사들이 주가가 오를 때 집중적으로 펀드를 판매하는 탓도 크다. 자산운용업계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펀드매니저가 철학을 갖고 장기간 펀드를 운용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행에 따라 그때그때 펀드를 만들어 판매한 뒤에는 ‘나 몰라라’ 하는 관행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처럼 펀드매니저의 이직이 잦은 상황에서는 스타 매니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과학적인 운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펀드가 늘 수익을 낼 수는 없겠지만 자산운용 규모가 작고, 역사가 일천한 한국 현실에서 구조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대로 운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주가가 떨어질 때가 투자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특정 종목에 편중된 투자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펀드가 손실이 날 경우에도 투자자가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자산운용보고서를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친절하게 작성할 필요도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수수료 인하 경쟁에 치중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품을 개발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조성일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산운용사들이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을 수 있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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