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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부정’ 첨단화… 팔 깁스에 스마트폰 숨겨 답안 촬영

입력 | 2013-11-05 03:00:00

1인당 400만원에 응시생들 모집… 고득점 연세대생이 깁스하고 시험
시험장 밖에선 답안 중계플레이… 일당 3명 구속 12명 불구속
취업 앞둔 서울대생도 의뢰




서울대 4학년인 박모 씨(29)는 G공사에 취직하려 했지만 영어점수(토익)가 걸림돌이었다. 응시자격이 토익 900점 이상인데 자신은 매번 600점을 넘기기 어려웠다. 8월경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토익 대리 칠 사람’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메일 주소를 가르쳐주고 고득점 비결을 문의했다. 다음 날 부산의 이모 씨(30)로부터 답이 왔다. 부산대 출신으로 기계공학기술대회와 컴퓨터 프로그램 전국대회 입상 등의 업적을 내세운 이 씨는 박 씨에게 고득점을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다. 이 씨와 친구 허모 씨(31)는 이런 방법으로 전국에서 12명의 응시생을 모집했다. 토익 점수를 900점 이상 보장하는 대신 1인당 4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이 씨는 인터넷 구직란에 토익 고득점 등 경력을 게시한 연세대 4학년 엄모 씨(27)를 섭외했다. 일명 ‘토익선수’라는 엄 씨는 토익 평균 점수가 970점이고 8월 시험에선 만점을 받기도 했다. 엄 씨는 시험 1회당 15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이 씨의 토익 부정행위에 함께하기로 했다.

이 씨와 허 씨는 엄 씨와 응시생 12명에게 지난달 27일 부산 북구 한 중학교에서 토익 시험을 치도록 했다. 이들에겐 시험 전날 북구 S모텔에서 무선수신기와 구리선(안테나 역할), 자석(이어폰 역할)을 나눠줬다. 무선수신기는 허리춤에 넣고 구리선을 목걸이처럼 차고 지름 2mm 자석을 귀 안에 넣으면 밖에서 무선으로 불러주는 답이 들린다는 걸 확인시켜 준 것. 이 수신기 세트는 중국에서 개발한 것으로 10만 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한편 이들은 엄 씨에게 좌측 팔에 골절을 입은 것처럼 깁스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골절 고정받침대 안에 스마트폰을 넣고 카메라 촬영이 가능하도록 조그만 구멍을 냈다. 깁스가 끝나는 지점엔 무선촬영 리모컨 장치를 설치했다. 엄 씨는 200문제 중 50문제씩 답을 적은 뒤 이를 촬영해 시험장 바깥에 대기 중인 이 씨와 허 씨에게 전송했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면 바로 포털사이트로 자동으로 올라가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 씨와 허 씨는 정답을 확인한 뒤 송신기를 가지고 시험장에 있는 응시생 12명에게 무선으로 답을 불러줬다. 그렇게 해서 박 씨는 960점을 받았다. 취업준비생인 또 다른 박모 씨(28)는 990점 만점을 받기도 했다. 나머지 회사원,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도 대부분 800∼900점을 받았다.

그러나 응시생들과 엄 씨, 이 씨와 허 씨 등은 시험을 친 뒤 S모텔에서 당초 약속한 대로 돈을 주고받다 경찰에 붙잡혔다. 시험주관사인 YBM한국토익위원회가 고득점을 받았는데도 매달 시험을 치는 엄 씨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던 것.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대장 조중혁)는 최근 실시한 제260회 토익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혐의로 브로커 이 씨와 허 씨, 부정시험을 친 엄 씨를 4일 구속했다. 또 응시생 1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토익 시험 부정행위는 응시생들이 답을 정확히 수신할 수 있고 적발 위험성도 작아 기존 수법보다 훨씬 진화한 방식”이라며 “이들이 다른 부정행위를 저질렀는지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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